대통령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유정인 정치부 차장

보름 전까지 대통령실을 출입했다. 2년 사이에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을 하던 곳에 가벽이 서고, 어딘지 조악해 보이는 조화가 붙었다가, 완전한 벽으로 막히는 것을 봤다. 마지막 날에도 청사 조경 작업이 한창이어서, 수시로 변하는 공간에 ‘의식을 지배받지 않고’ 변함없이 남아 있는 건 대통령뿐인가 싶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참패 뒤 그간 하지 않던 것들을 했지만, 동시에 무엇도 하지 않았다. 첫 영수회담은 협치 가능성을 탐지하는 수준에도 못 미쳤다. 대통령실 인사·조직을 통한 쇄신 효과는 ‘낙선자 회전문 인선’에 소멸됐고,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은 핵심 의혹들을 해소하지 못했다.

무엇이 그를 붙들어두는 걸까. 대통령실 안팎에서 특유의 소신과 ‘정치적 쇼’를 꺼리는 성정 따위를 말했다. 누적된 신호들을 보면 차라리 두려움 같다. 윤 대통령이 드물게 두려움을 언급한 적이 있다. “제가 만약 대통령이 되어 잘못한다고 했을 때 뜨거운 환호와 지지, 성원이 저에 대한 비판과 분노로 바뀔 거라 생각을 하니 정말 식은땀이 나고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2021년 10월31일, 4개월차 정치인의 첫 대국민 영상 메시지다. 전두환 관련 망언으로 호된 비판을 받고 사과마저 늦었던 그가 10일 만에 내놓은 고백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이 같은 두려움은 온당하다. 선거가 끝나면 승리한 이들조차 거대한 민심의 물결에 두려움을 고백하곤 한다. 하물며 참패한 이의 두려움은 식은땀을 잠깐 훔치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두려움을 성찰하고 공적 지위에 맞게 승화시켜 변화로 나아가는 것이 지도자의 역량이다. 그러나 총선 참패 50여일, 윤 대통령이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식은 고개를 가로젓게 한다.

최근 대통령의 말에선 선택적 망각이 드러난다. 국민의힘 워크숍에서는 “지나간 것은 다 잊자”고 했다. 반성은 화두에서 밀려났다. 민심이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먼저 무릎을 툴툴 털고 일어나 자리를 뜬 모습이다. 과오를 스스로 용서한 얼굴은 거울 앞에서만 편안할 수 있다.

자기방어 체제 구축은 설명 없이 이뤄지는 중이다. 민정수석을 부활시켜 검사 출신을 앉힌 지 한 달째 ‘방탄 수석’ 의구심을 풀 설명이 없다. 향후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가 본격화하는 국면마다 논란이 될 것이다. 대통령은 대신 “사법 리스크는 제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앞으로 대통령의 선의만 믿고 있으면 되나. 선의에 기대는 제도는 취약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윤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통화가 속속 드러나도 ‘전언’ 외 설명은 없다. 전언마저 ‘보고조차 없었다’ ‘채 상병 관련은 아니다’ ‘군사법원법에 맞춰 바로잡으라는 야단을 쳤다’ 등으로 엇갈려 불신만 쌓았다. ‘비판과 분노’로 전환한 민심에 대한 응답이 그저 ‘믿어달라’는 호소는 아니어야 하지 않나.

이 같은 신호는 두려움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대통령이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민의에 따라 무엇을 내려놓을지 추려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는 데 급급해 보이는 지도자만큼 불안해 보이는 존재도 없다.

유정인 정치부 차장

유정인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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