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에게 배운 자유

김봉석 문화평론가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자전 소설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자전 소설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창가의 토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영화를 보러 간다. 문화의날이라 영화 관람료가 절반이다. 하루 중에 할인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일정을 맞춰 보러 간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관람료가 1만5000원까지 올랐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일단 아무 영화나 보러 갈까라는 선택은 사라졌다.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은지, 몇번이나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한다.

5월의 마지막 수요일, 집에서 가까운 극장의 상영표를 살펴봤다. 시간대로 훑어내리다, <창가의 토토>를 발견했다. 내가 아는 <창가의 토토> 맞나? 개봉 소식을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고,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인지 몰랐다. 포스터를 보고, 영화 정보를 찾아보니, 내가 읽은 소설 <창가의 토토>를 각색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창가의 토토>는 일본의 배우이자 MC인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쓴 자전 소설이다. 1933년생인 그는 배우로도 유명하고, 1976년부터 아사히TV에서 <데쓰코의 방>이라는 단독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무려 40년 넘게 지속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방영된 토크쇼다.

1981년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창가의 토토>를 출간했다. 호기심이 많고, 내키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소녀 토토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퇴학을 당하고 엄마와 함께 토모에 학교를 찾는다. 고바야시 교장은 토토의 말을 4시간이나 들어주고, 입학을 허락한다. 일반적인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인 토모에 학교에 다니면서 토토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친구들과 함께 배워가면서. 감동적인 소설 <창가의 토토>는 일본에서 800만부, 전 세계에서 25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4년 정식으로 출판 계약을 통해 국내에 출간된 <창가의 토토>를 읽었다. ‘대안 교육’이 중요한 이슈였던 시절이다.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과 경쟁으로 일관하는 학교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함께 앞을 향해 나가는 학교를 꿈꾸는 사람에게 <창가의 토토>는 이상적인 소설이었다. 게다가 그런 학교는 실제로 존재했고, 대안 교육으로 성장한 소녀는 유명한 배우이며 MC인 동시에 평화운동가가 되었다.

어느 날 토토는 재래식 화장실에 지갑을 떨어뜨린다. 화장실 뒤편에서 똥을 퍼내는 것을 본 고바야시 교장은 자초지종을 묻는다. 지갑을 찾으려고 한다는 말에, 끝난 후에 똥을 다시 집어넣으라고만 말한다. 고바야시 교장은 화를 내지도, 혼을 내지도 않는다. 행동의 이유를 물어보고, 책임을 다하라고만 한다. 악행이 아니라 단순한 잘못, 실수라면 혼내지 않는다. 모든 일을 끝낸 토토는 지갑을 찾지 못했지만 괜찮다고 말한다. 충분히 노력했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니까 만족한다고. 오로지 결과만을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답이다. 고바야시 교장의 교육관은 다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진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좋다.

토토가 토모에 학교에 다닐 때, 일본 군국주의는 한창 기세를 올렸다. 개인은 국가, 집단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약함과 다정함은 쓸모없는 가치로 낙인찍혔다. 토토는 소아마비로 한쪽 팔과 다리에 장애가 있는 야스아키와 친해진다. 운동시간에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보는 야스아키를 위해 사다리를 가져와 함께 나무에 오른다. 운동회 날에 토토와 야스아키는 함께 이인삼각 달리기를 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지만 상관없다. 함께 다리를 묶고 뛰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 야스아키를 보고, 다른 학교의 아이들은 욕설을 내뱉는다. ‘군인도 못 되는 밥벌레’라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야 하고, 다른 나라를 침공해서라도 우리나라만 잘 살면 된다고 주장하던 집단이 바로 극우 민족주의로 무장한 일본 제국주의였다.

90여년이 지났지만, 야스아키를 조롱하고 국가를 위해 개인이 고통받아야 한다던 파시스트들은 지금 이곳에서도 기세등등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지금도 많다. 히틀러의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가 주장하던 적자생존, 인종과 민족 차별을 새로운 진리인 양 떠드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지금 <창가의 토토>를 다시 보니, 우리는 여전히 전체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세상에 살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없는 민주주의 체제는 파시즘의 그림자일 뿐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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