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은 공적 자산이다. 즉 정치권력도, 자본도 아닌 사회 일반의 자산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이 오로지 시민을 위해 기능하려면 특정 세력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공영방송이 집권 세력의 전유물이 되는 아픈 현실을 경험해야 했다. 일차적으로 그 피해는 독립성을 지키려는 방송 구성원들이 감당해야 했다. 해직, 징계, 좌천, 직무와 무관한 전보 등의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진실 보도를 할 수 없게 됐을 때 그 궁극적 피해자는 우리 사회였다는 데 있다. 따라서 공영방송 침탈을 막고 독립성을 보장하는 건 방송제도 논의의 최우선 과제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 구성이나 사장 선임에서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 공영방송의 경우 이사회는 정치권력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정치적 후견주의에 따라 구성되고, 그렇게 구성된 이사회가 정치적인 사장을 선임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래서 그동안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사장 선임의 특별다수제를 적용하거나, 이사회 구성에서 국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상호 견제하는 방안 등이다. 하지만 이런 방안 모두 정치권력의 개입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정치적 영향력을 상수로 한 상태에서 정치적 후견주의를 해소하는 해법을 찾는 것이니 애초 전제의 오류가 있다. 적어도 지금 방송법 체제에서는 정치권이 공개적으로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접 개입으로 공영방송을 정치화했다. 그런데 오히려 정치권이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혹자는 그런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영방송 독립성을 보장하는 정치 사회 문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 노르웨이 공영방송은 이사회가 사장의 자격 요건을 결정하면 이에 적합한 후보자를 소위 헤드헌터 회사가 물색해서 제안하고 이 중 선임한다. 참으로 부럽다. 우리나라도 그런 선진 문화로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후견주의를 약화 또는 해소하는 단계적 접근을 통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는 방송통신위원장을 해임하고 5인으로 구성하는 위원회를 대통령 몫 2인의 위원으로 운영하고, 그 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를 해임하고 교체해 사장을 해임했다. 그 현실 속에서 문화적 해법을 제시하는 건 연목구어다. 따라서 공영방송 독립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시급하다. 완벽한 건 아닐지라도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정치적 후견주의를 최소화하고 공영방송 이사 추천 주체를 학계, 현업 단체, 시청자위원회 등으로 다변화하는 그리고 사장 선임에 시청자인 시민이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방송3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22대 국회에서도 개정안이 제안됐다. 정부·여당은 추천 주체들이 야당과 가까워 야당의 영속적 지배를 기도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설마 미디어 관련 학회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면 공영방송의 기자, PD, 기술인들이 가입한 조직들을 정치적 이익단체로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청자위원회에 참여한 제 시민단체 대표자들을 의심하는 것일까? 개별 정치세력이 아닌 집단지성을 발휘할 이런 단체들을 의심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혹시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시민이 참여하면 현 정부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가장 문제가 됐던 정치적 후견주의를 없애고,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 제시도 없으면서 방송3법 개정안에 반대만 하는 건 이미 진행한 공영방송 장악을 유지하고 확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이 정부는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의지가 있는 민주정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