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문학, 역사학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변화가 여러 방면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가 그려주는 그림 때문에 웹툰 그리던 일을 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말이 들리고, 여러 나라말을 유창하게 통역하는 기능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폐지했다는 뉴스도 전해진다. 챗GPT가 등장한 지 불과 1년 반이 지났을 뿐이다. 최근에 나온 더 높은 버전의 챗GPT는 미국 변호사 시험(Uniform Bar Exam)을 상위 10%로 통과했고, SAT 수학시험에서 800점 만점에 700점을 얻었단다. 인간의 총체적 지능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경제학에 장기, 중기, 단기 경제변동 이론이 있듯이, 역사학에도 시간에 관한 비슷한 이론이 있다. 페르낭 브로델(1902~1985)은 세 차원의 역사적 시간을 말했다. 기후적, 지리적, 생물학적, 정신적 구조같이 거의 변하지 않는 장기지속, 인구나 사회계층처럼 어느 정도 변동하는 구조로서의 콩종튀르(conjoncture), 마지막으로 사건 같은 단기지속이다. 현실에서 우리 귀와 눈을 채우는 것들은 거의 셋째 차원, 그리고 일부 둘째 차원의 시간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제일 소란스러운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인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브로델이 ‘장기지속’ 영역이라 말한 것들이 변하고 있다. AI 등장도 그중 하나이다.

역사학을 공부해서 그렇겠지만, AI와 역사 연구의 공통점도 눈에 띈다. 역사학은 철학, 문학과 더불어 인문학의 대표적 학문이다. ‘人文’이라는 말은 ‘天文’과 함께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 <주역(周易)>에 처음 나온다. “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천문을 관찰하여 때의 변천을 살피고,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하여 이룬다).” 여기서 ‘人文’ ‘天文’의 文은 문장(sentence)이 아닌 ‘무늬’를 뜻한다. 현대어로 풀면 그것은 일정한 패턴(pattern)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개인·집단적 행위에서 인간 특성의 패턴을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AI가 하는 일도 ‘잠재된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독립적 요인들의 반복되는 상호작용 양상을 찾는 것이 AI가 발휘하는 여러 기능들의 핵심이란 뜻이다.

숨은 패턴을 찾는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AI와 역사 연구 사이에 차이점도 명확하다. 역사 연구자는 몇 가지 독립변수(AI에서는 이것을 매개변수라고 한다)만으로 패턴을 찾는 반면, AI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독립변수를 가지고 패턴을 찾는다. 독립변수의 이런 양적 차이 때문에 챗GPT와 역사 연구 결과에 다시 차이가 발생한다. 역사 연구의 결과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AI가 찾아낸 결과는 결과 도출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AI가 제시한 결과는 반문이 불가능한, 종교적 신탁(神託)이나 정치적 독재와 비슷해 보인다. 설명할 수 없다면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 연구와 챗GPT 사이에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이른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에 AI는 상당한 비율로 전혀 사실이 아닌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를 할루시네이션이라고 한다.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에 기반하여 인공신경망으로 구성되는 AI에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반면 역사 연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은 ‘사실’이 정확히 뭔지 확인하는 일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AI가 인간과 사회에 가져올 변화에 대한 의견 차가 크다. 다만 그 변화를 막을 수 없고,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것이리란 데엔 모두 의견을 같이한다. 이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정신적 존재’로 규정했던 인간들에게 AI는 새로운 규정을 요구하는 듯하다. AI를 이용한 더 높은 수준의 인문학이 등장할지, 아니면 인문학 자체가 종언을 고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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