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0일, 6월 민주항쟁 기념식이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지난해에는 정부 책임자들이 불참해서 비판을 받았는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했으니 작년보다는 나았다고 할까?
한덕수 총리는 “대한민국은 이제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룩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지구촌의 자유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전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했다는 말도 전했다. 그런데 나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민주주의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와는 반대로 이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민주화를 통해서 제거하려 했던 권위주의 시기의 통치 행태와 뭐가 다른가.
이날 기념식 직전에는 행사장 바로 앞에서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5월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유공자법)을 채 하루도 안 돼서 대통령이 거부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2년 전인 2022년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요구하며 팔순의 유가족들이 삭발을 했다. 그 삭발식 후 유가족들은 매일 국회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해왔고,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를 통과한 민주유공자법을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게 해놓고, 기념식에 초대하는 건 수용할 수 없었다.
‘운동권 셀프 특혜’는 없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 과정 중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이들, 그리고 부상자들을 민주유공자로 국가가 예우하도록 하자는 법이다. 유가족을 비롯해 추모단체들이 벌써 20년 전부터 제정을 촉구해온 법률이다.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을 국가가 기리기 위해 제정하여 시행 중인 법률이 ‘국가보훈기본법’이다. 이 법 제3조 제1호는 이 법의 대상들을 “가. 일제로부터의 조국의 자주독립, 나. 국가의 수호 또는 안전보장, 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라. 국민의 생명 또는 재산의 보호 등 공무수행”이라고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4월혁명 시기 희생자들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은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만, 6월 민주항쟁의 상징과도 같은 박종철, 이한열 같은 열사들은 국가유공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로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자고 팔순 넘은 유가족들은 집회와 행진, 삭발과 단식, 오체투지까지 감행했다. 나라와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청춘들을 당신들이 죽어서도 나라가 기억하고 예우해달라는 간절한 호소를 이어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부모는 돌아가셨다.
이 법의 제정에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선일보가 말하는 ‘운동권 셀프 특혜’이라는 프레임이다. 정부도 조선일보의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 보자. 박종철은 만 22세, 이한열은 만 21세, 전태일은 만 22세, 내 동생 박래전은 만 25세 때 국가폭력에 의해 사망했거나 스스로 민주화의 제단에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 이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으므로 자식도 없다. 그들의 부모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나 이 법이 제정된다 해도 특혜를 볼 수 없다.
특혜 논란이 있자 유가족들이 관련 조항 삭제를 요청하여 법안에서 삭제되었는데도, 국가보훈부는 “대학 입학 특별전형 대상에 포함”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이건 보훈부 강정애 장관이 대통령과 국민을 기망한 것이 아닌가. 또 보훈부는 기준이 모호하여 국가에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보훈부가 설치·운영하는 ‘보훈심사위원회’는 허수아비란 말인가.
노부모들의 시간도 얼마 안 남아
민주유공자법은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법이다. 권위주의 시대로 퇴행하지 않는다는 약속이기도 하고, 국가폭력과 죽음의 시대를 청산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 가겠다는 국가 발전의 비전을 밝히는 일이다.
젊은 청춘들이 국가와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는데,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예우하자는 법 하나쯤 22대 국회에서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팔순 노부모들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들의 마지막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