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인들과 해바라기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소피아 로렌의 우수에 찬 눈망울이 깊이 각인되었던 영화 <해바라기>.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멀리 소련까지 간 애잔한 사랑 이야기다. 무엇보다 화면 전체를 노랗게 물들인 대평원의 해바라기들이 바람에 흔들리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 촬영 무대는 우크라이나였다.

남미가 원산지인 해바라기는 17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으로 가져왔고, 우크라이나에는 18세기 중반에 도입되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해바라기 씨앗을 간식이나 빵의 재료로, 또 그걸 짜서 식용유로 사용했다.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50% 이상이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될 만큼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경제의 핵심 요소다. 영화 장면처럼 정원이나 들판 등 어느 곳에서나 해바라기를 볼 수 있어 우크라이나 상징이 되었다.

식용 목적이던 해바라기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활약했다. 최악의 방사능 오염 사고라 일컫는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그 현장에 해바라기가 투입되었다. 과학자들은 오염된 토양과 연못에서 방사성 원소인 세슘과 스트론튬 등을 제거하기 위해 해바라기를 심었다. 토양 속의 방사성 물질을 흡수하여 조직에 농축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식물환경정화(phytoremediation) 기법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에도 오염된 곳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체르노빌 사고를 통해 핵 위험성을 통감한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붕괴로 물려받은 핵무기를 1996년 포기하였다. 우크라이나 남부 미사일 기지에서 거행된 핵포기 기념식 장소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 등 3개국 국방부 장관은 평화 상징으로 해바라기를 심었다. ‘자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세 나라 공동 목표였다. 그 후 해바라기는 핵무기 없는 세상의 상징이 되었다.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는 없어졌지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국가들로 확전되지 않을까 모두 노심초사하고 있다. 긍정과 희망, 따뜻함과 평화를 상징하던 해바라기가 이제는 저항과 연대의 상징으로 변해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인 헤니체스크에서 우크라이나 여성이 무장한 러시아 군인에게 해바라기씨를 건네며 말했다. “이것을 호주머니에 넣어 가시오. 당신이 전사했을 때, 그 자리에는 해바라기가 자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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