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튼 토마토’란 웹사이트가 있다. 영화에 대한 비평과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1998년 설립됐다. 사이트 이름은 관객들이 공연을 보다 실망스러우면 ‘썩은 토마토’를 던졌던 예전 관습에서 따왔다.
원래 토마토는 잘 썩는다. 껍질이 얇고 수분이 많기도 하지만 딴 뒤에도 계속해 숙성되는 후숙과일인 까닭도 있다. 후숙과일은 과체가 최대로 커지면서 호흡량이 급증한다. 호흡량 증가란 ‘숙성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후숙과일이 토마토를 비롯해 사과, 배, 감, 바나나 등이다.
급히 숙성된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급히 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토마토는 50~60% 정도 익은 녹색 상태로 유통된다. 이 녹색 토마토는 5~7일이 지나면 빨갛게 된다. 하지만 토마토는 80% 이상 익은 완숙 토마토가 가장 맛나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 시스템에서는 완숙 토마토를 유통하기가 쉽지 않다. 딴 뒤에도 숙성되기 때문에 완숙 토마토는 새벽에 따서 당일 오후나 늦어도 다음날 오전에는 진열돼야 한다. 도매·소매를 거쳐야 하는 현재의 복잡한 유통 시스템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후숙 토마토도 장점이 있다. 과육이 단단해 유통 중 긁히거나 눌려도 피해가 적다. 또 유통 과정에서 후숙되기에 유통기간을 늘릴 수 있다. 또 냉장하면 후숙이 멈춰 소비자가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완숙 토마토 예찬론자다. 주로 완숙 토마토를 열을 가하지 않고 작게 잘라 올리브유와 허브 정도의 양념만 한다. 통밀빵을 곁들여 아침으로 먹는다. 완숙 토마토는 6월부터 9월까지 여름이 제철이다. 요즘이 내 아침상이 가장 풍족한 때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완숙 토마토와 후숙 토마토의 맛 차이를 모른다. 심지어 토마토의 맛 자체를 모른다. 토마토 맛을 ‘딱딱하다’나 ‘맹물처럼 밍밍하다’쯤으로 기억한다. 토마토는 당도가 8~10브릭스로 낮지만 향으로 변화하는 휘발성 물질이 400가지나 된다. 우리가 토마토 맛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다양한 휘발성 물질과 맛이 어우러진 풍미다.
토마토의 풍미가 잊혀가는 이유는 좀 더 구조적이다. 미 플로리다대 등의 연구를 보면, 유통효율을 위해 유전공학을 활용해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은 초록색·노란색이 섞이며 붉어지는 토마토를 배제하고 육종한 것이 이유로 지적됐다. 이 유전자(SIGLK2)는 토마토를 완전히 연한 녹색으로 익게 한다. 이런 녹색 토마토는 후숙을 거치면 완전한 빨간색 토마토가 된다. 하지만 이 유전자는 토마토 성장을 방해해 토마토 고유의 풍미를 해친다. 결국 후숙을 중시하는 현대적 유통 방식이 풍미 있는 토마토 대신 보기에만 좋은 토마토들을 슈퍼마켓이나 채소가게 진열대의 맨 앞 칸으로 가게 만든 것이다.
토마토 고유의 풍미를 경험하지 못한 소비자가 늘수록 토마토는 터질 듯한 즙이 매력적인 과채류가 아니라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에서 고기나 햄을 보조하는 밋밋한 채소쯤으로 취급될 것이다. 우리도 곧 미국처럼 덜 익은 녹색 토마토를 튀겨 먹을지도 모른다. 잘 썩지만 맛난 완숙 토마토가 귀한 세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