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료노조)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의협)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의협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진료거부와 집단휴진을 전면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전날 의료노조는 의사 최고연봉이 6억원이 넘는다는 내용도 공개했다(하지만 6억원대를 받는 의사는 지방의 특수목적 공공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였다). 이를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는 의사에 대한 혐오글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1년 전 건설산업노조(건설노조)가 처한 상황이 떠오른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해 4월11일 30대 건설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건설현장 정상화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건설노조의 불법행위근절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118개 건설회사가 타워크레인 월례비, 노조 전임비로 3년간 1686억원을 지급했다고 했다. 당시 정부와 건설사는 타워크레인 월례비, 불법채용 등을 내세우며 건설노조를 ‘건폭’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를 보도한 기사의 댓글에는 건설노조에 대한 혐오가 넘쳐났다.
개혁의 대상이 달랐을 뿐 두 사건의 진행은 매우 닮아 있다. 상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인민재판하듯 몰아세운다. 건설노조는 건설사의 불법하도급 관행을, 의사는 필수의료체계 붕괴를 같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이동풍이었다. 다른 것은 의사를 ‘의폭’으로 몰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윤석열 정부의 개혁작업은 대체로 이랬다. 사교육계는 킬러문항을 만들어 돈을 버는 파렴치범이었고, 금융권은 이자장사로 막대한 성과급을 받는 인면수심의 집단이었다. 과학계는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카르텔 집단으로 폄훼됐다. 개혁의 대상은 언제나 악마였고, 시스템 에러를 가져온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했다. 아니 상대를 악마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스템 에러를 부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같은 문제해결 방법은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검사들의 형태와 매우 닮았다. 정부의 주요 직책이 검사들로 채워졌을 때 우려했던 바로 그 국정운영방식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면 단죄하기 어렵다. 정부는 모든 갈등에서 ‘정의의 사도’ 위치에 서 있다.
반면 개혁 대상에 법조계는 쏙 빠졌다. 일반인이 보기에 전관예우, 사건수임 등 법조계도 손대야 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현 정부가 판검사, 변호사에 대한 개혁을 언급한 것은 보지 못했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국가별 번영지수’를 보면 한국의 사회적자본지수는 107위인데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155위에 그치고 있다. 정치권(114위)보다 낮다.
문제는 개혁의 결과로 사회적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노동자, 금융인, 사교육계, 과학자 모두 사익을 우선시하는 기득권 집단으로 각인되면서 각 집단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 “위아래로 다 썩었다”는 자괴감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사회 전체가 가스라이팅을 당한 듯한 기분마저 든다. 상대를 믿을 수 없으니 기댈 것은 나밖에 없다. 사회적 부조에는 박해지고, 각자도생의 심리는 더 강해진다. 감세를 지지하고, 재정지출을 축소하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개혁은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개혁이 완수되더라도 사회적 효율성이 개선되리라 자신할 수 없다. 신뢰 훼손에 따른 손실이 개혁에 따른 이익을 능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국가신뢰지수가 10%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상승한다는 세계은행의 연구결과가 있다. 반대의 경우라면 성장률이 0.8%포인트 떨어진다는 말도 된다.
개혁은 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개혁이 목적이 되는 순간 개악이 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에서 어느새 정부는 뒤로 빠지고 의사와 의료노조, 환자가 직접 대치하고 있다. 사태 장기화로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서로를 향한 비판 수위도 높아진다. 의사와 환자, 의료계 종사자는 결코 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가뜩이나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한국이다. 윤석열 정부의 개혁작업이 끝나고 나면 한국의 사회적 자본지수가 더 낮아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수학에서는 정답이 맞아도 문제풀이 과정이 틀리면 오답이다. 정부는 오답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