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과 독서율의 ‘기묘한’ 평행이론

고미숙 고전평론가

우리나라의 성인 10명 중 6명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안 읽어
독서는 ‘에로스’의 강력한 동기

지금은 먹방·노래, 감각의 시대
청년들에게는 가혹한 시절이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주제가 ‘출산율 저하와 인문학의 위기’였는데, 처음엔 좀 뜨악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건 알겠는데 그게 인문학의 위기랑 어떻게 연결되지? 한데, 토론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을 묻는 질문에 서방국가 대부분은 ‘가족’을 꼽은 데 반해, 한국은 첫째가 ‘물질적 풍요’였다. ‘인생에서 친구나 공동체적 유대가 지니는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겨우 3%만 응답했고, 세계 최하였다. 직업의 가치를 묻는 항목 역시 마찬가지. 이 자료들을 하나로 엮어보면, 관계나 활동은 됐고, 오직 ‘한방’으로 큰돈을 챙겨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로 정리될 수 있겠다. 대략 감은 잡았지만 막상 수치로 확인을 하니 좀 당혹스러웠다.

한데, 인터뷰 말미에 부각된 또 하나의 통계가 있었다. 다름 아닌 독서율.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 이건 진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까지는 불교, 조선은 유학의 나라였다. 일본의 사무라이, 유럽의 기사도, 몽골과 이슬람의 정복전쟁 등 거의 모든 문명이 ‘칼과 피’로 점철될 때 한반도에선 문치가 대세였다. 하여,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삶의 최고 가치는 독서였다. 또 지금은 세계 최강의 학력을 자랑하는 나라 아닌가. 한데, 독서율이 저 지경이라고?

여기에 이르자 문득 ‘출산율과 인문학’이라는 테마가 한 큐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1960년대생, 즉 베이비부머 세대다. 나라에서 ‘둘만 나아 잘 기르라’고 강요할 때도 기본은 대여섯을 낳았다. 그리고 당시는 책의 시대였다. 책에 대한 갈망, 그것이 교육열로 이어졌고, 이 세대는 자라서 87년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 된다. 당시 대학의 학생회관은 혁명의 열기 못지않게 에로스가 충만했다. 혁명과 에로스, 양극단에 있는 두 항목을 매개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책을 읽어야 했다.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어야 했다. 대화와 토론, 즉 로고스의 향연이 도처에 흘러넘쳤다. 그것은 에로스의 강력한 동력이기도 했다.

지금은 먹방과 노래, 춤과 피지컬의 시대다. 한때 생각했다. 이제야말로 대학은 ‘에로스와 로고스의 광장’이 될 거라고. 최루탄도 짭새도 없으니 말이다. 한데, 보다시피 아니었다. 연애 자체를 포기한 청춘이 수두룩하다. 단군 이래 청춘의 연애가 이토록 힘겨웠던 시절이 있을까? 하여, 이젠 확실히 알겠다. 감각적 즐거움이 에로스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하룻밤의 열기가 아니라 창조와 교감의 열정에서 비롯한다. 출산은 그 절정에 속한다. 그러므로 청춘남녀를 연결해주는 핵심고리는 지성과 스토리이고, 그 원천은 당연히 책이다. 낯선 존재들끼리의 케미가 일어나려면 무엇보다 읽고 쓰고 말하고, 이 ‘삼단콤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장이 문득 사라진 것이다. 대학에서도. 광장에서도. 그러자 연애 또한 일종의 게임 혹은 배틀이 되어 버렸다. 이제 연애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이런 마당에 웬 결혼, 웬 출산? 결국 출산율 저하와 독서율의 하락은 심층의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었던 것. 오, 이 ‘기묘한’ 평행이론이라니!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도 출산율 회복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더 시급한 건 출산율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이 아니라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다. 그들의 푸르른 청춘이 활짝 피어나야 한다. 청춘의 특권, 즉 ‘에로스와 로고스의 향연’을 포기한 채 ‘자기만의 방’에 갇혀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건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 청춘이 쇠락한 시대를 중년과 노년은 또 무슨 낙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하지만 상황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각종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학의 지성은 몰락을 향해 치닫고, 대학 바깥의 ‘책의 광장’ 역시 거의 초토화된 실정이다. 한 책방지기의 말을 빌리면, 지금의 정책은 국민들에게 ‘제발 책 읽지 말라’고 당부하는 수준이란다. 창조와 교감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감각의 제국’에 갇혀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난세다. 특히 청년들에겐 가혹한 시절이다. 이 난세를 명랑하고 슬기롭게 건너가려면? 역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이 곧 길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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