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6·29선언’을 하라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잃어버린 것 같다. 총선 후 여론조사를 보니, 30%대에 턱걸이한 사례도 있으나 대부분 20%대에서 헤매고 있다. 이건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고 야당과 협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의 일방주의와 독선의 대가다. 검찰의 힘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은 그 태생적 본질이 바뀌지 않은 탓이다. 그가 치켜든 공정과 정의라는 깃발이 부메랑이 되어 그 자신을 위선의 표상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다.

이런 것들이 지난 총선에서 태풍을 일으켜 윤석열 대통령을 심판했다. 그 결과,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이 국회 다수파가 된 이른바 분할정부(a divided government) 구조가 생겼다.

분할정부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덕목은 협치 능력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다수파가 된 야당과 함께 국정의 고민을 나누는 공감의 정치적 역량이 필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기존 통치 방식을 바꾸려는 조짐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총선 후에도, 검찰 권력에 탈탈 털린 야당 지도자들은 줄지어 법정 문지방을 넘어 다녀야 하고 국회는 문을 여는가 싶더니 불꽃만 연일 튀기고 있다. 기가 막힐 일은, 야당과 신뢰를 쌓고 국정운영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똘똘 뭉쳐 야당과 싸워라’ 했다는 것이다. 분할정부 구조에서 협치 선언을 해야 할 대통령이 독전(督戰) 선동에 나섰다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마음 상태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패배에 개의치 않겠다’ ‘국정운영의 교착에 괘념치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국회의 결정을 거부하는 일은 앞으로 더 늘어날 듯하다.

이 때문에 국정운영은 이미 난맥에 빠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헤어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는데 그럴 때마다 국정운영은 오히려 점점 더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대통령이 동해안에서 석유가 나올 수 있다고 발표해도 환호는커녕 의구심에 찬 질문만 쏟아지고 있고, 디올 명품가방 스캔들로 구설에 오른 대통령 부인이 헝겊으로 만든 에코백을 짐짓 들고나와도 찬사는커녕 조롱 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지지율은 움직일 기미가 없다. 대통령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비웃음의 대상이다. 이는 분노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보다 ‘정치적으로는’ 더 나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석 달도 너무 길다”라고 한다. 이 말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절망과 탄식이라면 이보다 더 적나라한 표현이 어디 있겠나 싶다. 지난주에 열렸던 해병대 채 상병 관련 국회 법사위 입법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 말이 특히 실감났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순리에 따랐으면 될 일을 왜 저렇게 일을 꼬이게 만들고 키웠느냐’라고 한숨을 쉬는 이들이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회복은 이제 ‘백약이 무효’로 보인다. 하여, 윤석열 대통령에게 ‘남은 기간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절박한 마음에서 제언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6·29선언’을 하라는 것이다. 헌법 개정과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정치사회 세력이 대타협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전환의 계기를 만들자는 말이다.

이런 제안의 배경은 짐작할 것이다. ‘3년은 너무 길다’라는 말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무능과 불통 대통령을 지켜보며 그를 뽑은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보내야 할 남은 세월이 암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이른바 ‘탄핵’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에 소모해야 할 에너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탄핵이 아름다운 미래가 자동 보장되는 능사도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 긴 3년’과 ‘너무 무거운 탄핵’ 사이의 파국적 균형(catastrophic equilibrium) 위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민하기 바란다. 1987년 6·29선언은 ‘위로부터 민주화’나 ‘아래로부터 민주화’와 다른 ‘협상에 의한 민주화’라는 모델이었다. 그 길을 따라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지금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으로서도 ‘6·29선언’ 모델이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 가장 명분 있는 길이라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걸 내려놓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자신의 검찰 독재, 무능과 불통, 독선으로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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