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석 출판평론가

얼마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 T야?” 그들은 하나같이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스스로 답한다. “T 맞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T(Thinking)형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나, 내가 진실과 사실에 관심이 많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심지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풍문으로 들은 T의 반대 성향은 F(Feeling)라는데, 사람과 관계에 관심이 많고, 공감 잘하고, 주관적 판단에 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등등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당연히 MBTI 검사 역시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T형 인간인지, 아니면 F형 인간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내게 ‘대문자 T’라는 명찰을 달아주었다.

알베르 카뮈가 1942년 발표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문제적 인물이다. 유일한 혈육인 엄마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양로원 수위가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이미 못을 박아둔 관 뚜껑을 열어주겠노라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는 수위를 말렸다. 모정이니 슬픔이니 하는 마음은 뫼르소에게 애초부터 없었다. 이 이야기까지만 듣고 “뫼르소는 T형 인간이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뫼르소는 과거 한 직장에 다녔던 마리를 만나 코미디 영화를 함께 보고 해수욕을 즐겼다. 사랑도 나눴다. 엄마의 장례식을 마친 직후의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뫼르소는 F형 인간이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T와 F 사이 어디쯤에 뫼르소가 존재하지 않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뫼르소는 후대 평론가들에 따르면 부조리한 세계를 사는 부조리한 인간, 즉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의 현현(顯現)이다. 모든 사람이 T나 F, 혹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196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과테말라 출신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는 가상의 중남미 국가에서 자행된 독재의 잔혹함과 신음하는 민중의 삶을 그렸다. 각하는 아무도 믿지 않는, 또 아무도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천재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 각하의 심복 미겔 카라 데 앙헬만큼은 각하를 믿고 따랐다. 그런 앙헬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각하의 정적 에우세비오 카날레스 장군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냉철한 T형 인간인 앙헬은 장군을 지능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장군의 딸 카밀라를 처음 본 순간, 그는 F형 인간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카밀라를 돕고 싶은 마음이 어느 틈엔가 생겼고, 한편에서는 몸과 마음을 모두 소유하고 싶은 충동이 불 일 듯 일어났다. 각하의 심복으로서 해야 할 일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뫼르소처럼 앙헬 역시 T나 F, 혹은 그 사이에서 맴도는 인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MBTI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성향을 잘 파악하면 함께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 십분 이해한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갈대이되 생각하는 갈대 아니던가. 그런 이들을 하나의 성향으로 묶어버리는 순간,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침소봉대하자면 아(我)와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세상의 출현은 거기서 시작된다. 사족처럼,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내게도 ‘대문자 F’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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