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하다. 전세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뻔히 보이는 잠재된 위험에 대한 대비 없이 위험을 키워왔고 그 피해는 임차인에게 집중되었다. 그 시작은 빚이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해 싼 이자로 정책자금을 쏟아부은 것이다. 임차인 처지에서는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합리적 선택이 전세다. 은행은 정부의 보증에 기대어 편하게 이자수익을 올렸고 투기꾼들에게는 무자본 갭투기의 꽃길을 열어주었다. 악의적인 사기범들이 이런 저위험 고수익의 사업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대규모 조직적인 전세사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명백한 사회적 재난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무주택 서민과 청년이다. 그들은 절규한다. “도대체 이게 왜 내 잘못이냐?” “왜 모든 책임을 내가 떠안아야 하냐?” “제발 살려달라”.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 연이어 피해자들이 극단의 선택을 하자 정치권은 어설프게 전세사기특별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빚에 빚을 더할 뿐 특별하지 못했던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 절망감만 안겨주었다. 이에 ‘선 구제 후 회수’를 골자로 한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국회를 통과하였으나 결국은 지난 5월29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력화되었다.
한편 피해자들의 절규에 응답했던 사람들이 있다.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 공익적 주택을 늘려가기 위해 애쓰는 사회주택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생각했다. 전세사기 피해 유형과 규모가 다양한데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마저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줄 수 없다면 우리의 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아?
지난해 4월 경기도 화성 동탄 지역에서 대규모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자 대다수는 2030 청년 1인 가구다. 사회주택 활동가들은 21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를 조합원으로 맞이하고 조합원이 거주하는 주택의 소유권을 이전받아 탄탄주택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원들은 조합과 시세의 90%로 새로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전세 피해 해법을 두고 한쪽에서는 공공이 다 책임지라고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덜렁덜렁’ 계약한) 피해자 책임이라고 한다. 주택협동조합 방식은 피해자도 일부 책임을 지고 공공도 책임을 일부 나눠 지는 구조다. 여기에 시민사회와 민간의 자발적 참여까지 더해 전세 피해 문제를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책임을 분담하고 머리를 맞대어 해결하는 사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설립 1년 만에 21명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 조합원 전원의 피해 복구를 완료했다. 결혼, 이직 등 긴급한 사정이 있는 조합원은 보증금 전액을 반환받아 퇴거했고 계속 거주 중인 조합원은 법적으로 안전하게 보장되는 보증금 이하로 보증부 월세 재계약을 완료했다. 평균적으로 93%의 피해가 복구된 것이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전세사기 피해 치유를 위해 사회연대 협동조합 방식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보여주었다. 이젠 정부 차례다. 거부권으론, 단편적인 정책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한다. 전세사기 걱정 없는 안전하고 탄탄한 집을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와 공공이 함께하는 사회적 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희망하며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