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스테이크용 등심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까지 좋아 계획에도 없는 구매를 하고 말았죠. 물론 스테이크 요리에 필요한 다른 식재료도 이것저것 구입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매리네이드 만들기입니다. 매리네이드란 고기를 부드럽게 하거나 맛과 향을 가미하기 위해 재워두는 소스인데, 이 소스로 고기를 재우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오늘은 올리브 오일에 다진 마늘, 소금, 후추, 로즈메리를 잘 섞어 만들었습니다.
이 매리네이드에 고기를 몇시간 동안 재워두면, 고기 안의 단백질 분해효소가 작용하면서 육질이 더 부드러워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해한 세균이 번식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패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소량의 소금을 첨가하는데, 그러면 유해균의 증식은 억제되면서 숙성이 서서히 진행되게 됩니다.
오일 베이스로 만드는 매리네이드는 향신료의 향을 고기에 잘 스며들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향 성분은 대부분 지용성입니다.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물에 잘 녹는 성질은 수용성이라 합니다. 따라서 향신료를 오일 안에 담가두면 지용성인 향 성분이 서서히 녹아나오는데, 이 과정을 추출이라 합니다. 중화요리에 자주 쓰이는 조미료인 고추기름을 제조할 때도 이 원리를 이용합니다. 뜨거운 기름에 고춧가루와 각종 향신료를 넣어두면 향 성분이 추출되면서 매콤한 고추기름이 완성되는 것이죠.
이처럼 매리네이드로 추출된 향 성분은 기름을 매개로 해서 고기 안으로 확산돼갑니다. 만약 물을 베이스로 매리네이드를 만든다면 향 성분 자체가 추출이 잘 안되니 깊은 향이 배어든 스테이크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고기 표면을 코팅한 오일은 스테이크를 구울 때 표면이 타지 않도록 해주는 완충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기가 잘 구워졌으니 스테이크를 더욱 돋보이게 할 가니시를 준비할 차례입니다. 주재료는 아스파라거스인데, 보통은 기름에 살짝 볶아냅니다. 그러면 바삭한 식감이 스테이크의 부드러움과 잘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스파라거스를 데쳐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요리 전체를 부드러운 식감으로 통일하고자 한 것인데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를 하고 말았습니다.
아스파라거스에는 아스파라긴산이라는 일종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피로 해소와 간 해독 등에 유용하다고 알려진 물질인데요, 숙취 해소에 좋은 콩나물에도 포함돼 있죠. 비단 기능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스파라거스의 독특한 풍미도 이 물질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은 수용성입니다. 콩나물국처럼 국의 형태로 조리한다면 국물로 추출해서 이용할 수 있지만, 삶거나 데치는 방식이라면 버려지는 물과 함께 유용한 성분 또한 사라지고 맙니다. 이러하니 아스파라거스를 데쳐냈던 저의 레시피는 비록 부드러운 식감은 얻었지만 아스파라거스 특유의 풍미와 영양은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