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화제가 되지 못한 기사가 있었다. 총선 경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24일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했는데, 제목은 ‘민주당 ‘정책협약 하려면 지지선언 하라’…“시민사회 동원” 비판에 철회’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가 시민사회단체들의 정책협약 요청에 대해 “공식적인 민주당 지지를 전제로 진행하겠다”고 했다는 것.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했고 민주당은 해당 지침을 철회했다는 것이다.
한 표가 아쉬울 만큼 치열한 선거운동이 벌어지던 중 생긴 촌극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진보적 시민운동에 대한 정치(민주당)의 하위파트너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일련의 평가와 겹쳐본다면 절대 가볍지 않은 보도다. 최근 민주당 내 당원민주주의 열풍과 함께 정당이 시민운동을 대체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언젠가부터 정치는 스스로 언론을 매개하지 않고 지지자들과 소통하더니, 아래로부터 당원을 직접 동원하는 장외투쟁력도 갖추게 되었다. 수만명의 당원이 모이는 집회에 시민운동 진영도 시민사회 몫으로 동원되기에 이르렀다. 청년단체의 청년들이 청년 몫으로 소비되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이런 상황은 시민운동의 존재 이유를 묻게 한다. 스스로 법을 만들 힘을 갖춘 데다 다수의 당원을 중심으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민주당 외에 시민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시민운동은 차별적인 쓸모를 잃은 건 아닐까?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정당 지지율은 각각 30%를 넘지 못한다. 두 정당은 사실 각자의 지지자들 외 국민들에겐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이 말은 자기 그룹 외 국민을 대표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두 정당이 중점에 두는 의제가 실제 우리 사회의 전부인 양 과대대표된다. 나아가 두 정당은 자기 지지그룹의 의견을 ‘국민의 뜻’이라 포장하기도 한다. 시민운동도 이 구도에 종속되어 있다.
차별성이나 독자성을 갖는다는 건 우선 그들이 형성하는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말한다. 이 말은 시민운동이 민주당과 한배를 타며 ‘더 쎈 민주당’ ‘더 급진적인 민주당’ 포지션을 취하는 것으론 어렵다는 뜻이다. 괜히 정의당이 조국혁신당에 대체된 것이 아니다. 유사한 이유로 시민운동도 대체되고 있다. 아니면 정당의 외곽조직 정도로 하락 조정된다. 그렇기에 선명한 우리 편이 되길 거부하는 시민운동은 내부의 적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이것이 시민운동이 현재 처한 조건이다.
시민운동은 ‘그들의 이슈’에 호응하기보다는 그 바깥을 향해야 한다. ‘그들의 이슈’에 가려진 이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럼으로써 시민운동은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고, 잘못 그어진 우리 사회 전선을 다시 긋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현시점 시민운동의 쓸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