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평등 상황을 볼 때 우선 그 현실적 실태에 주목한다. 하지만 아무리 격차가 심하고 상향이동 가능성이 막혀 있고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는 부자들이 잔치판을 벌려도, 정부와 정당들이 터무니없는 부자 감세 정책을 밀고 간다 해도 대중은 이 상황에 묵종할 수도 있고, 분노하고 못살겠다고 저항할 수도 있다. 불평등 체제를 유지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불평등 이데올로기와 이를 둘러싼 각축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로 세습자본주의를 비판한 피케티의 후속저서가 <자본과 이데올로기>였다. 여기서 불평등 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주어진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구조화하기 위한 일련의 담론과 제도적 배열”이다. 피케티는 모든 역사적 불평등 체제에는 이를 정당화, 자연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특히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좌파정당이 고학력자를 대변하는 정당 즉 브라만 좌파로 변질되었고 자산부자와 고소득자 이익을 대변하는 상인우파와 경쟁하면서 공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강 건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얼마나 안정적 지배력을 갖고 있는지, 이데올로기 각축전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다른 대안의 여지는 어떤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간 주로 능력주의 문제가 논의되어 왔는데 최근 조돈문 교수의 <불평등 이데올로기>가 출간됨으로써 논의마당이 한층 풍성해졌다.
저자는 오늘의 한국사회가 압축적으로 금수저-흙수저의 수저계급 불평등 사회로 추락했다고 보고 20가지 예각적 질문을 던진다. 상위 10% 소득점유율이나 소득배수(상위 10%/하위 50%)로 볼 때 선진국 중 미국이 가장 불평등하고 스웨덴이 가장 평등한데 한국은 미국에 가깝다. 그럼에도 바람직한 국가모델과 관련해 한국 시민들은 북유럽보다 미국식 모델을 선호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는 불평등 체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의 수혜자-피해자 대립구도에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지배계급이 승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민들도 자유시장경제 모델에 친화적인 시장·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며 적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저자가 말하려는 바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이 더 중요한데 책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저자는 불평등 지배이데올로기의 세 가지 기본명제와 하위명제를 제시한다. 세 가지 명제란 ①불평등은 없다, ②불평등이 있다 해도 정당하다, ③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없다 해도 대안적 평등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제1명제는 거부되고 제3명제는 대체로 수용되고 있는 반면, 제2명제에서 각축을 벌리고 있다고 한다. 각축전의 구체적 내용에서 불평등 낙수효과 명제와 불평등 순기능 효과 명제는 거부되었지만 상승이동 기회보장 명제는 수용되지도 거부되지도 않았다. 이는 강한 실력주의와 결합된 상승이동 가능성과 불평등의 대물림으로 인한 불공정성이 특이하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한 부분이 흥미롭다. 저자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지배력이 훨씬 강하다고 본다. 미국인들은 불평등 수준을 실제보다 덜 심각하게 인식하고 상승이동 기회보장 정도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은 실력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습자본주의가 덮쳐 실력주의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기가 어렵다.
결론이 이렇다. “한국사회는 불평등과 불공정 수준이 높고 시민들의 불만도 강하며, 자본의 일방적 계급지배 방식에 대한 노동의 저항도 강력하고 시민들의 상대적 공정성 원칙에 대한 헌신도가 높고 공정성 원칙 위반에 대한 응징 의지도 강하다. 한국의 불평등 체제는 소수의 최대 수혜자들이 불만이 누적된 압도적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둘러싸여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촛불항쟁이 우연히 발발한 일회적 사건이 아닌 것은 한국의 불평등 체제가 구조적으로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체제가 개선되지 않은 채 시민들 불만이 촉발 요인을 만나면 또다시 제2, 제3의 촛불 항쟁으로 분출할 수 있다.”
이 책의 핵심명제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한국의 불평등 체제는 불안정하며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절반만 성공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시민들은 저자의 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큰 토론거리다. 한국 불평등 연구의 새 장을 연 이 책은 불로소득 부자를 위한 여야의 감세 공모와 수저계급사회 유지 기도에 분노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좋은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