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흐링족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이번엔 딱 한 권만 샀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책을 딱 한 권 구입했다. 평소 ‘밥은 굶어도 책은 산다’는 신조를 나름대로 지켜온 나로서는 5년 만에 찾은 도서전에서 책을 딱 한 권만 샀다는 건 작은 사건이었다. 평소였다면 지름신이 강림해 에코백 가득 책을 담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귀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산 책들을 모두 읽었느냐고 묻지 마시라. 책을 사서 서가에 꽂아놓는 행위만으로도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나는 흰소리를 해왔다. 작고한 소설가 김성동은 저자 사인을 할 때 당신의 책을 서가에 꽂아만 주십사 하는 뜻에서 ‘삽가(揷架)’라고 쓰곤 했다. 책을 사서 서가에 책을 꽂아 두는 행위가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지역 서점의 경우 대형 서점과 참고서를 취급하는 일부 서점을 제외하고는 곧 간판이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10년 전쯤 인천을 대표하는 서점인 대한서림 1층에 빵집이 입점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출판과 서점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도서전 입구에서 누군가가 전단을 나누어 주길래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서점 하나 없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7곳이나 되고, 서점 소멸 예정 지역은 29곳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우리는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했다고 우쭐해하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출판사 하나, 서점 한 곳 없는 곳들이 수두룩한 현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극단(劇團) 한 곳 없는 지역은 말해 무엇하랴. 서점 한 곳 없는 지역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문화의 바탕이 ‘축적’의 힘에서 나온다는 점을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였을까. 도서전을 찾은 인파가 반가웠다. 13만명의 입장객 가운데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도서전 홈페이지를 통해 정부 지원은 받지 않고 ‘홀로 서기’를 했지만, 사실은 출판사와 독자들과 ‘함께 서기’를 한 도서전이었다고 자평했다. 36개 참가국, 530개 참가사, 219개 프로그램, 215명의 저자 및 강연자 그리고 무엇보다 13만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서기를 한 책의 축제였다.

독일 작가 발터 뫼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2004)에는 ‘부흐하임’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지상 도시와 지하 도시로 양분된 부흐하임에는 책 마니아인 ‘부흐링족’이 있는 반면, 지하 도시에는 스마이크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책사냥꾼들이 있다. 도서전 참가자들은 부흐링족에 가까웠다. 서정시 다이어트를 주로 하고, 실용서는 이따금 간식으로 음미하는 부흐링족들처럼! 두 시간 남짓 행사장을 순례하며 지역 서점들에 바라는 소소한 스티커들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 ‘동네서점이 로컬의 미래다’라는 메시지였다. 부흐링족들이 있는 한, ‘당분간’ 책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 엊그제 처음 방문한 구미 삼일문고에서 차마 빈손으로 나올 수 없어 어느 인류학자가 쓴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2024)라는 책을 샀다. 책을 사고 읽는 일이 ‘의례’가 되는 부흐링족의 삶은 어떠한가. 앞으로도 나는 부흐링족으로 살아갈 것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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