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선서·진술거부권을 다시 생각한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 선
이종섭·신범철·임성근 선서 거부
공직자의 정체성까지 비켜가

사회의 진보, 공론화해 문제 해결
진술거부권, 공직자엔 제한 둬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져나올 무렵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이거 모두 막아내. 수정헌법 제5조 권리를 행사하라고 해.” 수정헌법 제5조 중 관계된 부분은 “누구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형사사건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이 될 것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며 진술거부권을 인정한다. 특별검사의 요구로 법원에 제출된 백악관의 녹음테이프에서 이 발언이 드러나자,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헌법상 권리의 행사를 제시한 처사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하필 닉슨은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이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나왔던 일이 있다. 그런 입장을 극단적으로 밀고 가면 법정에서 심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국민들이 그의 범법행위 내용이나 수사 결과를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게 될 텐데, 그게 맞을까. 무죄추정의 원칙은 헌법에 정한 것이긴 해도,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비난 여론이 일어난 예는 드물지 않다. 한명숙 전 총리, 이석기 전 의원, 황교안 전 총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도 이를 행사한 바 있다. 비겁하다,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오만하다, 발뺌하는 듯한 모습을 국민들이 어떤 눈으로 볼지 한번 되돌아보기 바란다 등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공직에 있던 사람이 자기의 공무 수행 중 일어난 문제에 대한 국가의 조사활동 앞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지난달 국회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성근 전 사단장 등 3인은 진술은 하되 선서는 거부하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자신들이 공수처에 고발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국회에 소환된 증인이 그 증언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나 그 친족 등이 형사소추나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는 때에는 선서·증언 또는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고,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선서하지 않은 증인은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위증의 벌을 받지 않는다. 정작 형사소송에서는 선서무능력자 외에 선서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진술거부권이 있을 뿐이다. 선서를 거부하고 진술을 할 경우에는 위증의 벌을 받을 부담이 없으므로, 그 진실성을 담보할 만한 법적 장치가 없게 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 선서거부권을 따로 인정하는 것은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우선 진술을 들어 보자는 의도에서 그리된 것 같은데, 진실성이 없는 진술을 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진술거부권만을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진술거부권은 형사사건에서는 물론이고 국회에서의 조사절차에도 법률로 인정되어 있고, 판례상 행정사건에서도 그 행사를 이유로 내린 불이익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인정된다. 기본권이라서 그렇겠으나, 진술거부권을 제한하는 해석론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공직자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의 지위에 있고 공무 수행에서 성실의무나 공정의무를 지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공직자로서의 정체성을 비켜가면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워 진술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마땅치 않다. 어떤 의혹이나 범죄 혐의를 받을 정도의 일이 벌어져 그것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을 때, 잘했든 잘못했든 진실을 밝혀 책임의 소재를 가리고 차후에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런 유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터다. 사회의 진보는 기존의 가치에 대해 의문이 일어날 때 이를 공론화하고 논쟁을 거쳐 사회적 합의로 새로운 해법을 찾아가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헌법은 국가라는 공동체가 지켜가야 할 근본적 가치에 대한 정치적 결단의 산물이다. 기본권 역시 시대상황에 맞춘 맥락적 사고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여타의 기본권에 대해서도 때로 다른 권리와의 비교 교량을 통해 제한을 두는 것처럼, 진술거부권도 전현직 공직자의 경우에는 제한하는 해석을 시도할 수 없을지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 있는 사건에서는 국민의 알권리와의 비교 교량을 통해, 국회에서의 진술을 형사사건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선서나 진술의 거부를 제한한다고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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