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카의 MBC 점령 작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8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인 경기 과천시 한 오피스텔 건물로 첫 출근하고 있다. 2024.07.08 한수빈 기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8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인 경기 과천시 한 오피스텔 건물로 첫 출근하고 있다. 2024.07.08 한수빈 기자

“정치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족병’(足兵·충분한 군대)보다 ‘족식’(足食·충분히 먹는 것), 그 위에 ‘민신’(民信·백성의 신뢰)이라 했다. 믿음(信)은 사람의 말이다. 안보·민생이 다 급한 지금, 이 땅엔 대통령 말도 무너져 있다. 대통령이 첫 국정브리핑을 한 ‘동해 유전’을 성인 60%가 믿지 않는다. 스무 살 해병 죽음에 대통령실 말 바꾸기가 끝없고, 대통령이 꺼냈다는 ‘조작 가능설’에 이태원 참사도 아물지 못한다. 성난 민심, 그 위에 불쑥 ‘7월의 불덩이’가 던져졌다. 이진숙이다.

그도 이동관을 빼닮았다. 기자였고, 이명박 정권 때 인생이 바뀌고, 윤석열 대통령 특보를 거쳐 방통위원장에 지명됐다. 언론탄압 대명사인 것도 같다. 2012년 ‘김재철 MBC’의 기획홍보본부장 이진숙은 ‘직원 사찰’ 프로그램(트로이컷)을 묵인·방조해 유죄(손해배상)를 받았다. MBC 기자협회 첫 제명자가 된 것도,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비밀리에 민영화를 거래하다 들통난 것도 그해였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태원 참사 좌파 배후설’과 ‘한·일 동맹’을 썼고, ‘5·18을 폭도가 선동했다’는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무수한 말이 꼬리 물고 또 파헤쳐질, 자타 공히 ‘우파 전사’다. 하마평 돌 때까지 설마설마한 그 이진숙을 대통령이 낙점했다. 이동관이 그랬듯, 누굴 탓할 것도 없다. 이진숙의 적, ‘어제의 이진숙’이다.

집권 2년차 첫날이다. 2023년 5월10일, 윤 대통령은 임기 석 달 남은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면직 절차를 개시했다. 그 후로는 목도한 대로다. 김효재(직무대행 3개월)-이동관(3개월)-이상인(직무대행 1개월)-김홍일(6개월)이 13개월을 이어달렸다. 김효재는 KBS 이사장을 잘랐고, 이동관은 ‘친윤’ KBS 사장을 앉혔고, 김홍일은 YTN을 민영화시켰다. 이진숙의 표적은 삼척동자도 안다. 대통령실 수석이 “회칼 테러”까지 겁박한, 이 정권의 눈엣가시 MBC다. 십중팔구는, 이진숙의 ‘특명’을 원샷원킬로 본다. 거야가 벼르는 탄핵소추 전, 집행(효력)정지 소송으로 번질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진 교체’ 딱 한 발짝일 게다. “제가 그만두더라도 제2, 제3의 이동관이 나온다.” 아홉 달 전 이동관의 호언대로, ‘런홍일’이 그랬고, 한칼 쓰고 빠질 ‘런진숙’이 그 바통을 받으려고 줄섰다.

2017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사를 그린 다큐 <공범자들>은 클로징이 인상 깊다. 스크린에는 꽤 긴 시간, 슬픈 연어떼처럼, 300명 넘는 이름이 하염없이 위로 올라간다. 10년간 ‘공범자들’에게 MBC·KBS·YTN에서 쫓겨나고, 징계받고, 구속되고, 스케이트장·영업소 또 어디로 부당전보된 사람들이다. 그렇게 파업 얘기를 한몸으로 만든 공영방송·보도채널 3사 노동자도 이젠 뿔뿔이다. 김건희 보도 사과로 시작한 ‘박민 KBS’의 8개월, ‘김백 YTN’의 3개월은 처참하다. KBS는 뉴스선호도 1위를 3분기째 MBC에 내주고, YTN은 민영화 3개월 만에 그 선호도가 급락했다. 사장의 사과가 용산을 향하고, 언론이 권력에 굽혔다고 본 것일 테다. 시민의 눈은 거짓 없다.

“차라리 놔둬요.” 2012년 봄, 공정방송을 요구한 MBC ‘170일 파업’이 한 달쯤 지났을 때다. MB 청와대 고위 인사는 “머리 아픈 뉴스도 <PD수첩>도 안 보는 파업이 좋다”고 했다. 12년이 지나도, 권력과 언론의 긴장이 차오르면, ‘가카방송’으로 세상을 덮고팠던 그가 떠오른다. 곧 이진숙을 대입시켜도 될 자리다. 하나 남은 MBC를 침탈하면, 또 공정방송 파업이 일어날까. 정의로운 파업은 배고프나, 응원이 많다. 단, 지레 눕지 않고 쉬 포기 않고 밖으로 “도와달라” 외칠 때만, 그 응원은 크고 길어질 게다.

총선 후 13주째, 대통령 지지율이 21~26%에 서 있다(한국갤럽). 저부터 달라지겠다 한 말을 대통령이 까먹어서다. 의혹의 두 뿌리, ‘채 상병·김건희’가 캐지지 않아서다. 입틀막하는 ‘가카왕국’만 만들려 해서다. 공분일 게다. 대통령 탄핵 국회 청원이 130만을 넘었다. 이제 탄핵은 저잣거리 금기어도 아니다. 하나, 탄핵이 가벼운 얘긴가. 종국적으로, 그 탄핵은 팩트와 여론이 결정한다. 채 상병 1주기(19일)가 9일 앞이다. 눈물로 살았을 그의 어머니는 1년간 어떤 진실도, 위로도, 책임자 처벌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편지에 썼다. 그런데도 용산은 오늘 특검을 거부했다. 국회 나와서는 “문제될 게 없다”며 두려운 게 뭔가.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군주민수(君舟民水), 배를 띄운 바다에 격랑이 일고 있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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