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의 ‘나’의 경험

홍경한 미술평론가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Vincent)’는 누구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주제로 한 곡이다. 고흐의 작품을 기리기 위한 노래로, 고통 속 고독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를 담고 있다.

내게 ‘빈센트’는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첫 계기였다. 감수성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불러준, 그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귀로 전해지던 연민 어린 가사가 아니었다면 미술비평가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간신히 구한 작업실에서 혼자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1980년대 말, 스스로의 선택에도 의문과 불안이 가시지 않던 당시 접한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은 막연함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한 내 인생의 두 번째 노래다.

이후 내 삶에 그토록 짙은 영향을 미친 음악은 없다. 대신 숱한 미술작품이 일상을 채웠다. 학교까지 찾아와 미술책을 팔던 이들로부터 알게 된 벡신스키의 어둡고 절망적인 그림들과, 우연과 즉흥성을 기반으로 한 다다이즘(Dadaism),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분방하기 그지없던 1950년대 앵포르멜(Art Informel) 작품들은 자유의지와 미술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지니게 했다.

특히 서양미술의 입문서이자 미술역사의 개론서로 자리 잡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 속 일부 작품들은 현장 비평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바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와 베르니니의 조각 ‘성 테레사의 환희(Ecstasy of Saint Teresa)’다. 각각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꼭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이 중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성모마리아를 묘사한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자비’ 또는 ‘연민’을 뜻한다. ‘성 테레사의 환희’는 성녀 테레사의 몽환적 경험을 토대로 했으며, 그의 심장에 활을 겨누는 천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빛에 의한 신비로움과 경외심이 특징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결국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대성당에 보존돼 있는 ‘피에타’를 봤다.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 있는 ‘성 테레사의 환희’와도 만났다. 현재는 주로 동시대 미술을 비평하기에 지난 예술을 연구하는 일은 드물지만 그래도 실물을 대했을 때의 감동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곧잘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사고의 확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이다. 이에 나는 가급적 다양한 예술 형식과 장르를 경험하라 답한다. 학문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예술 커뮤니티 참여 또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댄다.

현대인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지지 못한 채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을 섬세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예술가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모두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며, 나의 존재가 곧 나의 언어이자 예술인데 현실에선 쉽게 억눌리고 만다.

그런 상황일수록 예술을 시작하게 된 원인과 배경을 되새기며, 세상에 펼쳐진 수많은 작품과 조우했으면 한다. 일상의 소소함마저 미적 문법으로 변환할 수 있는 나의 재능을 자신하며, 확장된 경험을 통해 나의 예술이 세상에 존재함을 입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나는 어쩌면 필연의 결과일 수 있음을 신뢰한다면 그래야 맞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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