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사건 발생 후 교사들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집회를 이어갔고 지난해 9월2일에는 전체 교원의 60%에 해당하는 30만명이 모였다. 49재 날엔 수많은 교사들이 교육부의 파면·해임 징계 엄포에도 연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했다.
이 사건 이후 무엇이 바뀌었을까? 학교는 안전해졌을까?
교육부는 지난 5월22일 ‘17개 시도교육청 학교 민원 응대 조성 현황’을 발표했다. 학교 민원대응팀을 98.9%의 학교에서 만들었다. 통화 녹음전화기를 설치한 학교는 95.4%, 외부인이 학교로 전화를 걸었을 때 통화 내용이 녹음됨을 미리 알려주는 통화연결음이 작동하는 학교는 88.6%에 달한다고 했다. 민원상담실도 89.1%의 학교에서 마련했다고 한다. 심지어 교육지원청 통합 민원팀은 100%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수치상으로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느껴진다. 교육부의 이러한 조치가 실제 교사들 피부에 와닿는지는 미지수다.
학교의 여러 민원은 여전히 1차적으로 교사들에게 제기되고,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꼈을 때 동료 교사나 부장교사 혹은 관리자들에게 알리는 방식도 바뀌지 않고 있다. 교사 출신인 백승아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학교 상담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안’을 살펴보면 교사들의 상담 민원에 관한 두려움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얼마나 학부모들의 민원이 두려웠으면 이런 법안을 만들었을까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많다. 두려움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고 시야를 좁게 만든다.
교사의 생활교육은 필연적으로 성찰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심리적 불편함을 동반한다. 안전한 대화를 위해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갈등 해결에는 교사의 갈등 중재자 역할보다는 빠른 판단으로 잘못을 가려주는 공정한 판단자의 역할이 많이 강조된다. 서초구 초등학교 사건이 강남의 과대·과밀 학교 1학년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학생 수가 많으면 교사는 아이들을 보살피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은 약 48만명이 태어난 2012년생이다. 이 아이들이 졸업하고 내년에는 약 33만명이 태어난 2018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생이 15만명 줄어든다. 이는 내년 부산의 모든 초등학생 수보다 많다. 아파트 신축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1학년 학급이 올해 6학년보다 1~3학급 줄어든다. 1학년 학급당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학교문화가 필요하다. 한 초등학교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경기도 읍·면 지역의 초등학교지만 혁신학교로 소문이 나면서 부모들이 주변으로 이사를 많이 온다. 학부모들은 저마다 다른 바람을 가지고 생활터전을 옮기는 선택을 했기에 학교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많았다. 새로 전학을 오거나 1학년인 학생의 학부모 민원이 많이 발생했다. 많은 교사가 학부모들의 다양한 요구를 견디기 힘들어 학교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자 학부모들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몇가지 민원에 관한 원칙을 정했다. 교사의 교수방법이나 생활교육에 대한 불만으로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먼저 학부모회에 고충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학부모회에서는 상당 부분의 민원을 학교문화에 대한 설명과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소했다. 학부모에게 자기 객관화 과정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 정말 심각한 민원은 학부모 개인이 아니라 학부모회 차원에서 제기하여 제도 개선의 밑거름이 되도록 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갈등이 정의로 나아가는 것이 평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까다로운 법적 절차와 법적 분쟁을 통한 갈등 해소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다. 학교마다 구성원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단절로 인한 두려움을 증폭하기보다는 대화와 소통으로 대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