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꿈에도 바라는 방학이 가능하단다. 서울시 지하철 1호선 방학역에 내리는 방법. 그딴 짓 따라 했다간 학교에서 평생 방학 통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방학인데, 아이들이 보이질 않아. 학원가에 가면 쥐꼬리라도 보일까. 방학은 왜 이다지 짧은지. 또 숙제가 골머리를 앓게 해. “해가 다 저물도록 계단 앞에 서서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움직일 줄 몰랐는데, 집은 여전히 멀고 방학은 벌써 끝나가는데.” 이장욱 시인의 시 ‘방학 숙제’는 영희와 철수의 무의식에 깔린 짧은 방학과 같은 인생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푹 자고 나면 ‘오후만 있는 일요일’, 또 푹 놀고 나면 어느새 끄트머리 며칠 남은 방학.
방학이란 잠시 학업을 내려놓는 기간이다. 힘 빼기, ‘하지 않음으로 하는’ 기이한 배움의 시간이랄까. 인생은 평생 학생 신분으로 살아야 맞다. 아는 체, 잘난 체 까불다간 큰코다친다.
옛늙은이 가라사대(노자 3장), “똑똑하고 잘난 사람을 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보화를 귀히 여기지 않을 때 백성들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욕심낼 만한 명품을 좋아하고 자랑하면 민심이 들끓게 된다. 똑똑하고 잘난 자들이 까불지 않는 정치, 그야말로 무위로 정치를 하면 저절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 재산에 이어 학벌까지 대물림되고, 지혜 없는 지식을 자랑하는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사람됨’은 평생을 두고 풀어야 할 숙제.
이번주부터 순례자학교 방학. 친구가 바닷가 숙소를 잡아줘 피정 중이다. 안 먹던 조식도 챙겨 먹고, 아픈 데가 있어 약봉지도 챙겨왔다. 짐가방엔 노트북과 성경책, 수영복 한 벌, 조빔의 보사노바 음반 한 장. 혼자 왔다며 밥을 안 주겠다는 야박한 식당에도 ‘감사합니다’ 인사했다. 밥하고 빨래만 안 해도 이렇게 시간이 남는구나. 빈 시간엔 물멍을 한다. 바닷물 보며 멍 때리기. 부서지고 깨져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파도를 보며 많은 걸 배운다. 바다가, 바닷물이 오늘 스승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