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원 지원금 공방이 공허한 이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논란을 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모두 민생을 앞세우나 정치 공방으로만 보여서다. 지난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민주당이 1호 당론 법안으로 발의한 ‘2024년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상정했다. 이는 민생 비상사태 해결을 위해 전 국민에게 25만~35만원을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25만원을 줍니까. 국민 1인당 10억씩, 100억씩 줘도 되는 거 아닙니까”라며 다소 조롱조로 비판했다. 정말, 정부와 제1야당의 정책 논의에서 생산적 토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한 번 지급하자는 제안은 늘 논란을 낳아왔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도 아니고, 모든 계층에게 적용되니 재정 효과를 두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의 위기가 모두를 엄습했던 시기도 아니고 재정은 감세로 인해 메마른 상황이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전 국민에게 한 번 지급하는 25만원이 정말 민생회복 조치이고 재정의 합리적 사용일까? 최근 민주당이 선별·차등 지원도 협의할 수 있다고 열어 놓았지만 일회성 현금 지원을 두고 소모적 논란은 되풀이될 것이다.

대통령 역시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면모를 찾기 힘들다. 야당 방안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취지를 살려 묵직한 대안으로 발전시켜 가야 하건만, 오히려 대통령이 정책 논의의 불씨를 꺼트려 버린다. 사실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엔 소득보장을 둘러싸고 대담한 대안들이 만발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불안정 취업자들의 소득단절에 대응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이 떠올랐고 실시간 소득파악 프로젝트도 출발하였다. 나아가 시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대안으로, 모든 시민에게 일정 소득을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부상하고, 국민의힘 내부에선 역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방식의 소득보장이 검토되었으며, 같은 원리에서 공정소득(유승민), 시민최저소득(심상정) 등도 제시되었다. 모두 기존의 전통적 소득보장 방안을 뛰어넘는 혁신적 제안들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소득보장 논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정부가 약자복지를 강조하면서 기준중위소득, 생계급여에서는 일부 개선이 있었으나 불안정 노동체제에서 다수 시민의 소득보장을 다루는 논의는 실종되었다. 애초 2025년에 자영업자까지 포함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을 완성하겠다는 계획도 이미 포기된 듯하다.

소득보장의 기본 인프라인 실시간 소득파악 작업도 순탄치 않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가 실시간 소득파악 작업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설립한 특별부서를 해산했으며,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상용근로소득 간이지급명세서의 월별 제출도 2년 미뤘다. 월 단위로 소득을 파악하는 것은 사회보험을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소득 기반으로 전환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긴급지원금이든 생계급여든 조세 기반 현금복지를 정책 수요에 맞게 운영할 수 있는 핵심 기반이다. 이처럼 실시간 소득파악은 ‘사각지대 없는 소득보장’을 위해 한시도 늦출 수 없는 과제이건만, 정부는 그리 마음이 바쁘지 않은 모양이다.

중앙정부의 답답한 상황과 대조적으로 지자체에선 주목할 만한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가장 손꼽을 수 있는 시도는 서울시의 안심소득이다. 안심소득은 역소득세 방식의 서울형 소득보장 모델로, 가구소득이 기준중위소득 85%에 미달하면 부족분의 절반을 지원한다. 내년까지 3년간 시범사업으로 진행되는데, 현재까지 중간평가에서 참여자의 근로소득 증가, 탈빈곤 등 의미 있는 성과가 제시된다.

애초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역소득세는 기존 현금급여를 모두 폐지하는 ‘복지축소형’ 소득보장이어서 보수적 방안으로 여겨져 왔으나, 서울시 안심소득은 저소득층 현금급여 외에 다른 소득보장은 병행하는 ‘복지확장형’에 가까우며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제시한 시민최저소득은 더욱 그러하다. 만약에 모든 시민이 역소득세를 통해 기준중위소득 100%의 절반, 즉 중위소득 50% 이상을 보장받는다면, 논리적으로 ‘상대적 빈곤 제로’를 구현하는, 인류사회에서 획기적이고 담대한 소득보장이 될 것이다.

지금은 시민들이 일하고 사는 방식이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전통적인 표준적 근로생애가 흔들리고, 인공지능의 현실화, 1인 중심의 가족구성, 고조되는 기후위기 등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제도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소득보장이 요구되는 때이다. 지금 25만원을 두고 진행되는 공방이 공허한 이유이다. 제발 시대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걸맞은 소득보장 논의를 벌이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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