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적 대통령제 다시 보기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을 또다시 거부했다. 총선 패배에도 대통령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 듯하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과 맹목적 지지자들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민의에 따른 국회의 결정을 거부만 할 뿐 그 어떤 국정과제도 주도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무슨 미래가 있는가?

윤 대통령이 당과 한 몸임을 강변하는 여당의 당대표 선거는 자중지란 그 자체다. 국정 비전은 아랑곳없이 저급한 편가르기만 한창이다. 이런 형국에선 누가 대표가 되건 대통령의 시간은 고장난 시계처럼 헛돌 뿐이다.

그렇다고 연임이 확실시되는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대통령의 시간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설령 그런 공작이 성공하더라도 상처투성이인 대통령에게 여건 야건 미래권력의 후보자들이 틈새를 내어줄 리 없다. 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이 거부된 바로 그날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 청문회 개최를 공식화했다. 더불어서 본인의 의중은 아랑곳없이 벌써부터 포스트 윤석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제2의 6·29선언이나 정치개혁을 전제로 한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론에서부터 불기소특권론까지 상상력이 한껏 동원된 정치술이 나온다.

그러나 정신승리법이나 포스트 윤석열론이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헌법이 채택한 민주공화적 대통령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모두 윤 대통령의 의중이나 행보를 국정의 중심에 두고 논쟁하고 있지만 다 헛수고일 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윤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실질적 선택권이 없다. 거부만으로도 존재의의가 있다고, 그가 무너지면 더 이상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견강부회하고 싶겠지만, 국민들의 관심을 벗어나 이리저리 떠났다 돌아오는 해외순방이나 일방통행식 민생토론회야 마음껏 할 수 있겠지만, 그래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흔히들 우리 헌정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단정한다. 때마침 윤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행보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말고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그게 무슨 제왕적 대통령인가? 유신과 5공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그 잔재가 끊임없이 우리의 자존감을 어지럽히고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우리의 권력구조일 수 없다. 87년 헌법은 명실상부하게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를 구축하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아쉬운 대로 이를 구현해 오고 있는 것이다. 다만 권력을 사유화하고 공정과 상식을 송두리째 말아먹는 검찰국가로 전락시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윤 대통령의 마이웨이 행보가 보여주듯이 제왕적 대통령과 같은 ‘현상’이 반복될 정도로 더 높은 수준의 민주공화제를 위해 검찰 같은 권력기관이나 선거제 등의 정치개혁이 아직도 절실할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적 대통령제의 전제가 대통령뿐 아니라 의회 또한 국정의 중심으로 삼는 정치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의회가 입법권을 중심으로 국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통령은 그 효과적 집행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민주공화제의 원칙인 것이고 대통령제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이 헌법적 정당성을 가지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 결과는 큰 시사점을 준다. 영국은 총선 결과 14년 만에 노동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융합된 내각제를 채택하고 그림자내각을 운영하는 헌정특성상 새 노동당 정부는 보수당의 국정기조를 신속하게 전환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극우정당이 1차선거에서 1위를 하는 이변을 낳았던 프랑스 총선은 결선투표 결과 좌파연합이 제1당이 되고 집권 중도연합이 제2당이 되어 최악은 면한 형국이다. 프랑스는 헌법상 특정 권한이 보장된 총리를 두지만 그 임명 여부를 오로지 대통령의 의지에 맡기는 체제다. 집권연합의 패배로 현 총리가 일단 사의를 표명하였지만 여론 향배에 따라 동거정부나 현 총리 유임 등이 결정되어야 하므로 정국유동성이 높다.

두 나라의 판이한 총선 향배를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더 민주적인 증거라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 오히려 두 나라 모두 총선 향배에 따라 민심을 반영하는 정치를 위해 골몰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제에서도 의회가 국정의 조타수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도 민심을 부정하는 대통령의 거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국회를 기반으로 국민 스스로가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민주공화적 대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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