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민 김재영 농민의 순종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지난 3일 한우 생산자들이 소를 싣고 와 한우반납투쟁을 벌였다. 한우값 하락과 생산비 상승으로 키워봤자 소똥만 남을 뿐이라며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다음날인 4일엔 여의도에서 전국농민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상복을 입은 농민들이 트랙터와 이앙기, SS기라 부르는 과수방제기계를 싣고 여의도로 올라왔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러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올라왔다. 농민대회 날에 부러 때를 맞춘 듯 여의도 일대는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고, 폭염까지 겹쳐 신발이 쩍쩍 달라붙었다. 나일론으로 만든 상복까지 겹쳐 입은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가 팥죽처럼 뜨겁기만 하였다.

너나없이 살기 힘들어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을 꼽자면 농어민이다. 누군가에겐 기후변화이고 기후위기지만 농민에겐 ‘기후재난’이자 재앙이다. 게다가 이번 폭우로 농경지가 쑥대밭이 되어 한 해 농사가 모두 망했다는 소식마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미 농민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벼랑 밑으로 떨어지고 있다.

삭발, 단식, 혈서, 농작물 태우기, 상여 매기가 고루하다며 야멸차게 말해도 이것 말고는 뜻을 전달한 길이 없는 이들이다. 그중 트랙터와 SS기 같은 농기계는 농민들이 지닌 가장 비싸고 귀한 자산이자 생존의 필수도구다. 이 도구들을 끌고와 반납을 하겠다는 몸짓은 절실함을 알아달라는 뜻이다. 지난 4일 서울로 싣고 온 농기계는 트랙터 3대, 이앙기 4대, SS기 1대였는데 대부분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그중 1t 트럭에 SS기를 싣고 온 36세의 김재영 청년 농민이 연행된 후 결국 구속되었다. 1t 트럭에 실릴 정도의 SS기는 육중하거나 위협적인 농기계와는 거리가 멀다. 농민이 구속된 것은 2006년 한·미FTA 집회 때 이후 18년 만이다. 주말임에도 각계에서 1만3000장의 탄원서를 모아 석방을 촉구했으나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철창에 가두었다.

김재영은 경남 진주에서 부모님과 함께 고추와 피망, 매실 농사를 짓는 청년 농민이자 농민운동가다. 서른 접어들어 시작한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사무국장 일을 7년째 맡아오면서 농민회 살림을 꾸리고 있다. 그의 아버지 김군섭 농민은 가톨릭농민회부터 부산경남농민회를 이끌던 대표적인 농민운동가다. 어머니 주성희 농민은 진주여성농민회의 여성농민운동가다. 농산물의 자유로운 수입이나 틀어막는 불한당 같은 존재로 욕을 얻어먹고, 여기에 ‘빨갱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던 농민운동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김재영은 기꺼이 순명하였다. 공부해서 농사짓지 말고 살라는 말을 듣고 자라온 나는 그 심연이 궁금할 뿐. 농민집회가 열리면 투쟁을 이끄는 아들을 보면서 부모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던데, 구속된 아들 면회를 하면서는 걸출한 농민운동가 부부의 목소리도 떨렸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천주교 신앙을 지켜온 김재영의 할아버지도 독립운동가이자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다 하니 의에 살고 의에 죽는 것이 가풍이구나 짐작할 뿐이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3대가 농민운동을 펼쳐온 집안의 자손이 도주를 하면 대체 어디로 할 것이며, 농기계를 무슨 수로 인멸한다는 건지 강짜를 부리고 있다.

농촌에 청년들도 드물지만,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청년들은 그중에서도 고작 5%. 한 번 막내는 영원한 막내인 농촌에서 김재영은 5%의 금지옥엽이다. 하지만 청년농업인 3만명을 육성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허황된 목표 속에 김재영의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순종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영은 정의에 순종한 청년농민이었으므로 처음부터 배제된 존재였다. “재영이가 없어가 일이 죄다 멈췄다 아입니까.” 부산경남연맹 의장의 말이다. 이 나라에 김재영들이 없다면 트랙터가 멈추고 끝내 한국 농업이 멈출 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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