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3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여 소상공인·서민 지원, 물가안정·생계비 경감, 내수 보강, 잠재리스크 관리 등을 민생안정과 경기회복세 확산을 위한 중점과제로 제시했다. 아울러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해 국민 삶의 질 개선과 경제의 지속 가능성 강화를 위한 중장기 10대 과제를 제시했다. 하반기 정책 방향과 과제가 역동경제를 위한 구조개혁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성장의 질적 차이를 매개로 장단기 정책과제가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먼저 구조적 차원에서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경우엔 성장의 양적 측면과 함께 질적 차이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경기개선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반도체 수출 주도의 성장이 민생회복에 기여하는 정도는 제한적이다. 2024년 1분기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 3.3% 중 순수출의 기여도는 4.3%포인트이지만, 내수의 기여도는 마이너스 1.0%포인트를 기록했고, 월평균 실질임금은 1.7% 감소했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증가율은 2023년 6월 1.2%에서 2024년 6월 0.3%로 하락했다. 반도체 산업의 자본집약적이고 수입유발적인 특성으로 인해 반도체 수출이 주도하는 성장의 내수진작 효과와 고용 및 임금효과는 크지 않다.
다음으로 경제여건의 변화가 분배와 성장에 미치는 연결고리를 명확히 해 정책 수립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는 세계 경제의 보호주의 경향에 대응해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장을 정책대안으로 제시했지만, 미·중 간 격화되고 있는 경쟁이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한국의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충격은 중장기 성장전략의 수립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이다. 더욱이 기후변화는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 요인이지만, 어디에서도 대응 방안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도입을 예고하고 있는 탄소국경세는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으로 구성된 한국의 수출산업에 커다란 위협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책대안의 합리적 조합을 위해서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의 틀을 넘어 정책선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자본에 대한 감세 조치를 혁신생태계 강화 방안으로 제시하였지만, 이러한 조치는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줄여 사회이동성을 개선한다는 역동경제의 정책목표와도 충돌한다. 더욱이 대출 규제 완화 등 금융지원에 편중된 소상공인 대책은 높은 부채비율, 가파르게 상승하는 연체율을 고려할 때 근본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양면시장(디지털 플랫폼)에서 중개기업 플랫폼사업자의 ‘약탈적 가격’으로 소상공인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도 찾아볼 수 없다.
한편 대전환기의 구조변화에 직면해 성장동력을 살리고, 분배구조의 개선으로 사회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투자국가로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고용안전망과 사회안전망, 인내자본(patient capital)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혁신의 생태계를 지원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구축해야 한다. 경기변동의 완화가 장기적으로 성장과 분배에 긍정적 영향을 초래한다는 사실에 비춰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서 안정화 정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유럽이 경험했던 자멸적 긴축재정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건전재정의 틀에 갇혀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용하고 자본소득에 대한 감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엔 대규모의 불용예산이 발생했고, 2024년 중앙정부 총지출증가율은 역대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25조원의 소상공인 지원금 중 재정 소모는 5조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역동경제 로드맵’에선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의 대상과 한도 확대, 배당 증가금액에 대한 저율 분리과세 등을 기업 밸류업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불로소득의 확대는 오히려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약화시킨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자본소득에 대한 감세는 분배는 물론 성장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불평등, 저성장, 삶의 만족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역동경제를 이루기 위해선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고, 소요 재원은 증세와 국채 발행의 적절한 조합으로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