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나는 서울 강남의 한 식품기업에서 열린 이탈리아 파스타 기업의 ‘2024년 아시아·태평양 경연대회’ 한국 최종 예선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4월에 시작한 이 대회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싱가포르,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8개국에서 현직 셰프 대상으로 국가별 예선을 진행했다. 각국 예선 우승자는 오는 10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결선을 치른다.
한국 결선에 올라온 셰프 6명의 경력은 화려했다. 대부분 미국과 이탈리아 등에서 유학한 현직 셰프였다. 요리경연대회 다수 수상자도 있었다. 경연 시간은 45분. 파스타를 요리하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2명이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한 명은 분자요리로 레몬과 홍합 캐비어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셰프는 갑오징어 살로 조갯살을 감싼 계란을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좋았지만 시간이 아쉬웠다.
유력한 우승 후보는 나폴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셰프였다. 그는 훈제 굴을 올린 어란 파스타를 선보였다. 한여름에 삼배체 굴을 훈연한 아이디어도 좋았고 시칠리아 올리브 오일과 염장 숭어알(보타르가)을 써서 향과 맛도 좋았다.
그런데 우승 메달은 예상을 깨고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만든 셰프에게 돌아갔다. 서류로 그의 출품작을 처음 봤을 때, ‘너무 고전적인데’라며 의아했었다. 개인적으로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의성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맛있었다. 그의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정교히 축조됐다. 튀긴 가지에 두 가지 식감을 줬고 토마토도 5가지나 사용했다. 수제로 만든 리코타 치즈는 새콤·폭신했다.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바질로 파스타를 장식해 상큼한 향을 입혔다. 심사위원들은 고전적 레시피를 섬세하게 해석해 푸근한 ‘할머니표 파스타’를 선보인 이 파스타에 우승 메달을 안겼다.
노르마는 이탈리아 말로 ‘표준’이란 뜻이다. 1920년 시칠리아의 한 극작가가 이 파스타를 먹고 “노르마”라고 외친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가지, 토마토, 바질 등 시칠리아 대표 농산물로 만든 이 파스타는 시칠리아의 에트나산을 상징한다.
가지는 10세기께 아랍을 통해 시칠리아에 전달됐다. 가지는 매끈한 표면과 기이한 모양, 그리고 쓴맛 탓에 디아스포라로 유럽과 아랍을 떠돌던 유대인만 먹었던 ‘소외된 자’의 음식이었다.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신음했던 시칠리아인들은 그런 가지를 튀겨 파스타에 올렸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우리나라의 나물죽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심사위원이었던 나에게 파스타 알라 노르마의 우승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클래식 레시피가 갖는 깊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많은 요리사들이 한식 세계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전통에 어긋나지 않게 한식을 새롭게 재구성해왔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한식이고 어디까지가 퓨전인지 경계는 늘 모호했다. 심지어 아직도 대부분 한식 메뉴는 공인된 표준 레시피가 없다. 그런데 내가 이날 맛본 노르마 파스타의 맛은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세련된 변형 한식 레시피 개발보다 한식의 근원에 대한 꼼꼼한 재해석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오리지널이 갖는 힘은 어떤 기교보다 울림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