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무덤으로 향한다.
뚜렷한 희망과 두려움 없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만나겠지.
그리고 자신에게 묻겠지.
하필이면 멀고 험한 길을 택해서
왜 모르는 곳을 향해 외롭게 걸었을까?
그리고 왜 온 힘을 들여
그렇게도 급하게 걸어 왔을까?
조용히 기어가는 지렁이도 무덤 바로 앞에서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말이지.
막심 박다노비치(1891~1917)
우리 앞에는 언제나 여러 갈래 길이 있었고, 수많은 별이 안개에 젖은 길들을 밝혀 주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 만나거나 갈라지면서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왔다. 우리는 순간을 영원처럼 살기 위해 언제나 열심히 살았다. 언제부턴가 ‘열심’이라는 말이 우리 대신 살기 시작했다. ‘진심’이라는 말이 우리 대신 바빴다.
벨라루스의 시인 막심 박다노비치의 이 시는, 얼핏 노년에 깨달은 인생의 허무나 달관으로 읽히지만, 시인의 생애를 알고 다시 보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시인은 겨우 25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둔 젊은 시인은 죽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다. 하필이면 왜 그렇게 “멀고 험한 길을 택해서” 왔냐고. “왜 온 힘을 들여” 그렇게 “급하게 걸어” 왔냐고.
오늘 “조용히 기어가는” 지렁이에게서 배운다. 생의 바닥에 배를 밀며 ‘열심히’라는 생각 없이, 지렁이는 지렁이라는 마음 없이 무덤까지 길을 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