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수많은 길이 있어도

이설야 시인
[詩想과 세상]우리 삶에 수많은 길이 있어도
우리 삶에 수많은 길이 있어도
다 무덤으로 향한다.
뚜렷한 희망과 두려움 없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만나겠지.
그리고 자신에게 묻겠지.
하필이면 멀고 험한 길을 택해서
왜 모르는 곳을 향해 외롭게 걸었을까?
그리고 왜 온 힘을 들여
그렇게도 급하게 걸어 왔을까?
조용히 기어가는 지렁이도 무덤 바로 앞에서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말이지.

막심 박다노비치(1891~1917)


우리 앞에는 언제나 여러 갈래 길이 있었고, 수많은 별이 안개에 젖은 길들을 밝혀 주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 만나거나 갈라지면서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왔다. 우리는 순간을 영원처럼 살기 위해 언제나 열심히 살았다. 언제부턴가 ‘열심’이라는 말이 우리 대신 살기 시작했다. ‘진심’이라는 말이 우리 대신 바빴다.

벨라루스의 시인 막심 박다노비치의 이 시는, 얼핏 노년에 깨달은 인생의 허무나 달관으로 읽히지만, 시인의 생애를 알고 다시 보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시인은 겨우 25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둔 젊은 시인은 죽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다. 하필이면 왜 그렇게 “멀고 험한 길을 택해서” 왔냐고. “왜 온 힘을 들여” 그렇게 “급하게 걸어” 왔냐고.

오늘 “조용히 기어가는” 지렁이에게서 배운다. 생의 바닥에 배를 밀며 ‘열심히’라는 생각 없이, 지렁이는 지렁이라는 마음 없이 무덤까지 길을 밀고 간다.


Today`s HOT
우크라이난 군인 추모의 벽.. 나토 사무 총장이 방문하다. 홍수로 침수된 말레이시아 샤알람 제 34주년, 독일 통일의 날 레바논에서 대피하는 그리스 국민들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세인바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평화 시위
베네수엘라의 10월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보트 전복사건.. 다수의 희생자 발생한 콩고민주공화국
허리케인 헬레네로 인한 미국의 마을 모습 인도의 간디 추모식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더운 날 칠레의 모아이석상,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