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핵전)는 과학과 자본의 총아다. 수백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자본 힘으로 조립되고, 청정한 무공해와 안전 불패라는 신화를 두른 에너지로 둔갑한다. 과연 그럴까. 핵전은 가장 비자본적 산업이다. 원료인 우라늄 채굴과정의 환경 훼손, 막대한 원전 건설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공동체 파괴, 핵폐기물 처리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과 후대로의 전가 등을 생각하면,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는다는 자본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신비한 자연을 파괴한 죄과는 흘러넘친다. 자연의 품에서 꺼낸 우라늄을 강제 분열시켜 얻은 열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동안 발생한 독성물질인 방사능은 지구 속을 돌고 돌며 자연계나 인간을 병들게 한다. 방사능이 중화되는 기간은 길게는 수백만년 걸린다. 붕괴된 후쿠시마 핵전을 식힌 방사능 오염수는 바닷물에 희석되고 있지만, 삼중수소 등 복잡한 이름의 방사능들이 먹이사슬을 거쳐 지금도 인류의 몸속에 쌓이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위험한 핵전을 짓는 데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합의가 필요함에도 관료·전문가·건설사의 원전마피아는 집요하게 핵전 건설을 관철시킨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핵전 지역의 주민들이다. 경주 나아리 주민들의 상여를 이끄는 처절한 투쟁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그들은 롭 닉슨이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폭력, 시공을 넘어 널리 확산하는 시간 지체적 파괴, 일반적으로 전혀 폭력으로 간주되지 않는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폭력”(<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김홍옥 옮김)이라고 말한 느린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삼중수소의 내폭에 더해 행복 추구의 기본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다. 세계적으로 핵전 주변의 암환자 발생 비율이 높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최근 영광핵전 수명연장 시도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빛 1·2호기는 각각 내년과 내후년 40년의 설계수명을 완료한다. 한수원은 이를 연장하고자 무리수를 둔다. 2023년 8월까지 두 곳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만 해도 102건이다. 한빛 1-6호기 전체 180건 중 57%로 전국에서 가동 중인 25기의 핵전에서 나온 597건 중 17%에 해당한다. 격납건물 철판 부식 및 공극이 한빛 1·2호기에서 3838개가 발견됐다. 체르노빌은 인간의 실수, 후쿠시마는 자연재해로 재앙을 가져왔다. 어떤 형태든 한번 파손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인 것이다. 그렇게 안전하면 왜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의 한강변에 만들지 않는가. 전력 3분의 1이 유실되는 송전 과정도 없어 경제적이지 않은가.
영광·함평·고창에서 논란이 된 주민공청회를 보면, 이 나라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형편없이 훼손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은 엉터리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의 폐기와 수명연장 절차 철회, 해당 지자체의 지역 행정 독립성 고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민 입장에서 핵전 안전 규제에 앞장설 것 등을 요구하며 한빛 1·2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사고 위험이 큰 노후 핵전 수명연장을 하려면, 최소한 최신기술을 도입하고 지역민 안전 대책을 구체화한 평가서 초안으로 주민의견을 수렴하라고 요구한다.
주민들이 반발하는 평가서 초안에 적힌 암호 같은 전문용어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방사능 오염은 물론 지진과 군용기 추락이 일어나는 한반도의 땅과 하늘로부터 상존하는 위험 대비책이 거의 없다. 2022년 6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에 국가의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것처럼, 사고 후에는 나 몰라라 할 것이 뻔하다. 위험의 지방화는 국가폭력이다. 전 세계 410여기에서 뿜어대는 핵전의 방사능으로 지구는 거주 불능의 행성이 되고 있다. 엔트로피(무질서)를 가중시키는 핵전을 폐기하고, 천지가 무한히 베푸는 재생에너지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당연히 정부는 탈핵전 정책의 회복과 친환경에너지 도입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