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할 이들이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24차 세계수사학사 학술대회(7월23~26일)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말이 어떻게 문명을 움직이고, 말의 힘이 어떻게 역사의 방향과 성격을 바꾸고 결정하는지에 대한 학술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말 잘함의 역사와 말의 힘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학술대회는 말 잘하는 사람들의 경연대회(agon)가 아니라 말 잘함에 대해 자신들이 연구하고 새롭게 찾아낸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모인 공부하는 이들의 말 잔치이다. 이 잔치를 준비하고 주관한 학회장 데이비드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200명이 넘게 모인 잔치였다. 어느 것 하나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설하고, 말 잔치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성황리”라는 표현이 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한 판단은 아니다. 이 판단에 힘을 실어주는 증인들이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문헌학과 수사학, 역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에게도 고맙다. 사연인즉 이렇다. 한 사람이 하루에 들을 수 있는 발표는 6개 정도였다. 하루에 60개의 발표가 이뤄지므로, 전체 발표의 10%밖에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잔치에선 학생들이 각자 원하는 주제를 다루는 발표장에서 들은 발표의 요약과 새로운 앎과 물음을 저녁의 공동 식탁에 풀어 놓았다. 공동식사는 이내 심포지엄으로 변했다.
각자의 관심과 방식으로 술과 말의 심포지엄을 즐겼다. 때로는 제도적인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구미의 대학을 부러워하고, 때로는 자신의 공부가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학술적인 좌표를 가늠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학문적 호기심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진 동료와 선생을 찾아낸 것에 대한 기쁨도 함께 나눴다. 이는 나에겐 아주 새로운 경험이다. 술에 취한 것보다도 말에 취한 것이 더 오래가고 강렬하다는 것도 체험할 수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