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4개월 만에 인상했다. 예상한 일이지만, 경기 사이클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통상 금리 인상은 경기가 좋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을 때 단행되곤 한다. 일본 경제는 이런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경기는 확연한 둔화 추세이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7%로 역성장을 했고, 2024년 연간 성장률도 0.1%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8% 성장과 비교하면 매우 부진한 흐름이다.
물가의 오름세도 진정되고 있다. 지난해 3%를 넘었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올 들어 2%대로 내려앉았다. 일본은 장기간 디플레이션으로 고생했던 국가였기 때문에 요즘 경험하고 있는 2%대의 물가 상승률은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디플레이션 기대심리에 종지부를 찍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디플레이션으로 신음한 기간은 1990년대 이후 30년이고, 인플레이션이 이슈가 됐던 기간은 최근 2년 정도에 불과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촉구했던 일본 정치권의 행동도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이어 집권 자민당의 2인자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도 금리 인상을 촉구하면서 일본은행을 압박했다.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태를 정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많은 나라에서 정치인과 관료들이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를 공공연히 요구했던 사례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정치인들이 금리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 되찾기 실험 10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났다는 찬사도 있었고, 일본 주식시장이 1989년 버블 증시의 고점을 넘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지만, 일본 경제 내부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세대 간 충돌’과 ‘수출과 내수의 온도차’가 그것이다. 금리 인상의 이유는 여기서 찾아야 한다.
일본 경제의 변화는 2012년 12월 아베 내각이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보냈다는 시각엔 동의하지 않는데,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려는 일본의 노력은 2012년 아베 2차 집권기부터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20년’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10여년간 이뤄졌고, 나름 성과와 한계를 남긴 채 아베 집권 이후의 실험이 막을 내리고 있다.
소위 아베노믹스의 주요 정책들은 ‘잃어버린 20년’을 불러온 요인들과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안티테제와 다름없었다. 특히 엔·달러 환율 조정은 아베노믹스의 핵심이었는데, 1985년 플라자합의 직후의 급격한 엔화 가치 절상이 일본의 장기불황을 야기한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레이건 행정부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직면한 심각한 대외불균형을 완화하고자 일본·독일 등 미국에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들의 통화 가치 절상을 요구했다. 플라자합의는 이를 위한 이벤트였다. 미국에 “No”라고 말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일본은 이를 충실히 따라 엔·달러 환율은 플라자합의 직전 260엔에서 단기간 내 120엔대까지 급락했다.
이런 정도의 환율 변화를 견딜 수출기업은 없다. 일본의 수출은 급격히 악화됐고, 이를 상쇄하려 내수 부양을 명분으로 단행된 과도한 저금리 정책은 일본 부동산·주식 시장에 엄청난 버블을 만들었다. 기업들은 본업에 충실하기보다 유휴자금을 활용해 주식과 부동산 투기에 열중했다. ‘재테크’는 1980년대 후반 일본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빗대 만들어진 단어다.
이후 자산버블이 붕괴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졌고, 인위적으로 높아진 엔화 가치를 활용해 기업들은 해외 투자를 급격히 늘렸다. 때마침 중국이라는 세계의 공장이 글로벌 자본주의 분업 체제에 편입된 효과도 있었겠지만, 기업들의 막대한 해외 투자는 일본의 제조업 공동화로 귀결됐다. 환율 주권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결과가 꼬리를 물고 ‘잃어버린 20년’으로 이어졌다.
미완으로 막 내리는 ‘아베노믹스’
2012년 시작된 아베노믹스의 트레이드 마크는 엔저였다. 아베 집권 초기 80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초 161엔까지 상승했다. 하마다 고이치 전 예일대 교수는 아베노믹스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엔저 예찬론자였다. 하마다 교수는 엔화 약세가 디플레이션 탈피의 즉효약이 될 것이라 주장했고, 실제로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됐다. 아베노믹스 이후 엔화 약세는 미국과의 교감 아래 진행됐다. 엔화의 인위적 약세가 인접국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근린궁핍화론’은 엔저가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내정과 관련한 이슈라는 미국의 해석에 묻혀버렸다.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들의 수출을 늘렸고, 수입물가를 높여서 디플레이션 종식에도 기여했다. 그렇지만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은 새로운 내부 모순을 초래했는데, 일본 인구의 30%에 달하는 고령자와 내수업종 종사자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아베와 기시다 내각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구매력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본의 수출 대기업들은 정부 방침에 호응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렸지만, 수입물가 상승이라는 도전에 직면한 내수기업들은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없었다. 또한 연금생활자인 고령자들의 실질 구매력은 생활물가 상승분만큼 악화됐다. 디플레이션 탈출의 조짐이 보이고, 주식시장은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이유이다.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일본이 행한 10년의 실험은 미완의 성공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아베 집권 이후 일본의 명목GDP 성장률은 연평균 1.1%로, 아베 내각 이전 10년 동안의 평균치 -0.5%보다는 확연히 개선됐다. 그렇지만 실질GDP 기준으로 보면 아베 출범 이후 연평균 성장률 0.69%, 이전 10년 연평균 성장률 0.61%로 변화가 미미하다. 수입물가 등 가격 요인의 변화가 명목GDP를 끌어올렸지만, 실질적인 경제활동은 정체됐다는 의미이다. 일본 경제는 가격 변화가 경제 주체들의 행동에 영향을 줘 생산이 늘어나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베노믹스라는 모르핀이 추동했던 일본 경제의 짧은 부활이 마무리되고, 다시 대정체 국면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