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도 좋지만, 여럿이 왁자지껄 떠들며 함께 먹는 음식엔 공유의 미덕이 있다. 그것이 술잔이든, 감정이든, 또는 땀 냄새든. 예술도 마찬가지다. 오감으로 느끼는 예술 중 가장 손쉽고 흔히 접하는 게 음악일 것이다. 감성을 동시에 같이 나눌 수 있는 것도 음악이다. 합주가 그렇고 합창이 그렇다. 모두 함께 부르는 떼창은 참여와 공유의 감동이 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고단했던 내 젊은 날을 지탱해준 비타민이었다. 거의 반세기 동안 힘들 때마다 그 노래를 웅얼거리며 나는 다시 일어섰다. 노래를 부를 일이 거의 없는 요즘에도 티브이나 라디오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슴속 저 아래서부터 무언가 뜨끈하고 단단한 게 서서히 차오른다. 고리타분한 꼰대가 된 지금도 가슴이 절절하다.
홀로 부모님 산소에 들르면 나는 가끔 ‘아침이슬’을 불렀다. 가사와 곡조가 내 삶과 겹치는 것만 같아 울컥하기도 했다. 마치 인생의 편린들이 순간순간의 파노라마가 되어 느린 동영상처럼 들판에 펼쳐졌다. 혼자 있을 때 흥얼거렸던, 그리고 노래방에서도 열창했던 노래. 어디 그뿐인가. 모두 어깨동무하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합창했던 것도 그의 노래였다.
우리 시대의 정치와 사회는 물론 자연과 환경까지 번져간 그의 노래는 장엄하고 거룩하다.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그의 삶과 노래 속의 메시지를 모두가 공감했다. 그의 노래가 소시민부터 대통령까지,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불멸의 노래가 된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아침이슬’이 모두를 위한 노래라면, ‘상록수’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자전적 노래처럼 느껴진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로 시작해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로 끝을 맺는 ‘상록수’는 1970년대 후반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들어졌다. 가죽공장에서 일하며 암울했던 시절을 헤쳐 나가야 했던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젊은이의 의지가 그대로 녹아 있는 민중가요다. 그의 외침은 미래가 없었던 공장의 노동자들에게도 한 줄기 빛이 되었으리라.
음전하고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는 격정적으로 토해내는 웅변보다 더 큰 울림이 있다. 숫기 없고 스스러운 듯한 그의 웃음 속엔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소나무처럼 선비의 올곧음과 초연함이 묻어 있다. ‘뒷것’을 자처한 그 덕분에 우리는 ‘앞것’이 될 수 있었다. 그가 이 땅에 뿌린 상록의 씨는 곳곳에서 피어나리라. 꽃으로, 나무로, 나아가 대지를 뒤덮는 늘 푸른 민중의 숲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