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게는 동아줄이지만 강자에게는 거미줄인 것이 법이다.’ 솔론의 말이다. 자신에게 향한 법은 거미줄처럼 찢어버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법을 동아줄로 이용하는 통치자를 그리스인들은 튀란노스(Tyrannos)라고 부른다. 독재자를 뜻한다. 튀란노스들 중에는 완력과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자도 있지만, 대개는 말기술과 법기술을 자신의 통치술로 삼는다. 대개 자신의 지지 세력에 의지해서 다른 세력을 외적으로 돌리거나 정치적인 희생양(scapegoat)으로 만드는 말기술과 법기술을 자신의 통치술이라고 자랑한다. 이들에 대한 플라톤의 말이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시민 대중이 자신의 말에 잘 넘어간다는 것을 믿고 같은 나라 사람의 피에 자신의 손을 적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늘 그렇듯이 누군가를 무고하고 법정으로 끌고가서 살해한다. 그렇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뒤에 혀와 입으로 같은 나라의 사람의 피를 불경스럽게 맛본다. (…) 이런 짓을 하던 이들은 정적에게 살해당하거나 폭군이 되어버린다. 인간이 늑대로 변한다.”(<국가> 제8권 565e-566a)
인용은 아테네의 데마고고스들이 말기술과 법기술에 아주 능한 정치꾼들임을 보여준다. 이런 정치꾼을 플라톤은 늑대라고 부른다. 겉은 사람이지만 속은 늑대이기에. 이런 늑대 정치꾼이 우리에겐 조금은 낯설지도 모르겠다. 힘과 폭력에 의지하는 군사 독재자에 대한 경험을 해본 적은 있지만, 말기술과 법기술을 이용한 늑대 정치꾼에 대한 경험이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에.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는 완력과 폭력을 이용하는 강성 독재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투쟁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지만, 말기술과 법기술을 교묘히 이용하는 연성 독재에 맞서는 역량과 대응 전략이 아직은 미비하고 미약한 상황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말기술과 법기술의 연성 독재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찾아내고, 이를 시민 사회의 공통 경험으로 만들고 역사의 자산으로 축적해야 하는 당면과제에 직면한 것이 우리 민주주의이기에. 연성 독재의 극복도 어쨌든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한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