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1949년 5월 국무회의에서 8월15일을 ‘독립기념일’로 의결했고, 국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0월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광복절’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인 독립기념일을 굳이 광복절로 수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처럼 독립을 선언한 날이라면 1919년 3월1일이 그에 해당할 수 있고, 타자로부터의 독립 혹은 해방을 강조하기보다 당연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나라를 되찾았다는 의미인 광복이 더 적절하다고 합의했을 수도 있다.
광복(光復)에는 무단에 의한 강탈과 점유가 끝나고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왔다는 벅찬 감동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굴곡 속에도 광복절만큼은 이념과 정파를 넘어서 한뜻으로 기릴 수 있었다. 독립운동 선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일본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 옳지 않다고 여길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반복해서 질타한 ‘사이비 지식인과 검은 선동 세력’이 국민을 편 가르기 한 탓일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의 법통을 이어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참으로 미미하고 답답하긴 했지만 대한제국은 국가로서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주권을 무력으로 빼앗은 일본제국의 늑약은 무효이므로 그 뒤를 잇는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2005년 해외에서 타계한 독립운동가들에게 국적을 찾아주자는 국적법 개정안이 반려된 것도, 바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어받았으므로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한사코 임명함으로써 광복절 행사마저 반쪽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서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상해 임시정부’라고 격하하여 표현한 것을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더구나 암흑을 만든 일본의 책임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고 광명을 위해 몸 바친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말이라고는 의례적인 서두 외에 찾아보기 어려운 광복절 축사에서, 도대체 어떤 광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