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정치’를 넘어서

귀를 의심했다. 반국가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니.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작년 6월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한 바 있다. 반국가세력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지니고 유엔사 해체와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했다. 작년 광복절에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등으로 위장하여 공작을 일삼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너무도 쉽게 어떤 이들을 국민이 아닌 자, 우리 사회의 적으로 만들었다.

30%를 못 넘는 지지율을 공안정국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로만 볼 수 있을까. 다른 한편에선 거대한 세계관이 충돌하듯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를 향한 돌팔매질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가 뒤로 움직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 같다. 한 진영의 눈에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굴종하고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토착왜구고, 다른 진영의 눈에 더불어민주당은 자유 대한민국을 중국과 북한에 넘기려는 반국가세력이다. 서로를 밀정 또는 간첩이라고 부른다. 험악한 단어들이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할수록 무언가가 ‘바로 세워지기’보다는 혼란과 적대가 분출되고 긴장이 고조될 뿐이다.

포퓰리즘 정치는 적을 설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적들이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트리고 모든 문제가 그들 탓에 벌어지며 그들을 부수거나 제거해야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주장한다. 사실 ‘순수한 인민 대 부패한 기득권’ 간 대결이란 구도는 민주화 서사나 사회운동에서 익숙하게 활용되는 대중 동원 논리다. 그러나 이젠 그런 낙인과 배제가 정치의 다른 말인 양 정치 일반의 논리가 되었다. 나아가 그렇게 형성된 적대가 정치적·정서적 양극화 심화와 맞물리며 사회 전반을 쪼개놓을 기세다. ‘친일 대 간첩’으로 싸우다가 우리 사회가 돌이킬 수 없이 쪼개져 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이 엄습한다.

민주당은 친일·반민족 행위 옹호자들의 공직 임명을 제한하고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처벌’하는 법을 당론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간첩법 개정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서로를 반국가, 반민족, 반국민으로 규정하고 ‘국가 이름으로’ 단죄하거나, ‘민주주의 이름으로’ 엄벌하는 폭력이 난무할 것이다. 공안정국과 얼마나 다를까.

포퓰리즘 정치가 동원하는 정념은 적대를 기초에 두기에 언제든 폭력적으로 분출될 수 있다. 적과 싸우고 상대를 절멸시키는 식의 정치논리가 강화될수록 사회의 엄벌주의나 사법화 경향이 강화된다. 선과 악의 도덕적 우월주의가 강조될수록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행위가 숭고해지거나 정당해질 것이다. 사회운동도 불신과 적대가 만연한 사회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부정적 정념에 기댄 유사 전쟁식 운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찰의 태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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