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역사전쟁 재개에
분명한 게 있다면
홍범도 장군 논란 때처럼
항일독립투사를 포함해
이국 땅을 헤매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를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존재의 무게를
느낄 역사를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적 목적과 의도에
따른 것인지 여부를 떠나
윤 정권 주도 역사전쟁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1) 4663명! 한국의 베트남 전쟁 파병 군인 중 전사자 숫자다. 한국의 베트남 전쟁 파병과 참전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이루어졌다. 총파병 인원은 32만여명에 달한다. 그러니까 전체 파병 군인의 1.4%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전사자 숫자는 자료에 따라 수십명에서 백수십명까지 차이가 있다).
얼마 안 된다고 여겨지는가? 전사자를 숫자로 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숫자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 모두 각각의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이름과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유일한’ 형이었고 아들이었다. 전사자의 형제와 부모에게 전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을 1.4%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터이다. 숫자로는 존재의 무게를 드러낼 수 없다. 그래서 전사자 명단을 하나하나 인명사전식으로 편찬하라는 요구도 있다. 삶의 관계를 담은 기억의 서사 속에서만 존재를 드러낼 수 있기에.
2) 최근 강원도 화천에 있는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월남참전기념관)에 다녀왔다. 파병하기 전 병사들을 훈련시켰던 곳이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의 인권탄압 현장으로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로 쓰이기도 했던 곳이다. 30도를 훨씬 웃도는 더운 날씨에 땡볕 아래를 걷는데도 그곳에 발을 들여야 했던 당시 청년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서늘했다. 사방팔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이곳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꼼짝할 수가 없겠구나”라는 느낌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전쟁터로 갈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청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고한데도 삼청교육대에 끌려온 이들의 심경은 또 어땠을까?
관계자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빠져나갈 수가 없는 곳’이라 훈련소와 삼청교육대로 썼다고 한다. 오고가는 도로조차 없어 교통을 통제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고가는 도로가 생긴 지금도 교통이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방문객이 좀 있냐”고 물었더니, “어디 (오고가는 길이) 사람들 오게 생겼냐”는 핀잔 같은 답을 들을 정도였다.
그래도 기념관은 얼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콘텐츠들도 베트남 전쟁 당시의 국내외 정세 기술 등에 있어 나름 구색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반공주의에 기초해 파병과 참전의 정당성만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유치함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전사자들 명단을 적어놓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담으려는 곳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정치의 가장 극적 형태인 전쟁과 관련한 일과 장소인지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인들이 오기도 하냐”고. “전혀 안 온다”고 한다. (파병을 보낸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자, 정치적 계승자일 수밖에 없는)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아예 베트남 전쟁 파병과 참전 역사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는 평을 곁들이기도 한다.
베트남서 죽은 이들의 서사 외면
정치인들이 이곳에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툭하면 ‘역사전쟁’을 벌이면서도 말이다. 베트남 전쟁 파병과 참전의 역사는 정쟁으로 삼을 거리가 못 되어 혹은 삼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인가? 너무 외진 곳이어서 못 간다 하면, 그건 정치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거나, 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중히 여기는 목적과 의도를 갖고 있다면 정치인은 달나라든 화성이든 어디든 간에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서 가야 한다. 전사자들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고, 그곳에는 가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작년 현충일 윤석열 대통령이 현충원의 베트남 전쟁 전사자 묘역을 방문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화천의 기념관도, 또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현충원 방문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공인하는 곳에 전사자 명단을 적어놓거나 유해를 안장했다고 해도 파병과 참전의 필요성과 효과를 주로 조명하고 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목숨을 걸고 호국보훈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문을 걸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사하기 전부터, 또 파병되기 전부터 한 사람으로서 지녀왔던 존재의 무게를 각각의 삶과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뒤로한 채 베트남의 전쟁터로 향해야 했던 ‘사연’ 등의 기록을 통해 드러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현재의 5060세대들은 자신의 가족, 친지 중에서 베트남 전쟁 파병 군인 출신자를 찾거나 만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나의 경우 내 아버지와 이모부, 그리고 내 아내의 아버지(장인)가 계신다. 이분들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라면서 이분들께 베트남 전쟁과 파병 그리고 참전 경험 등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다. 가족, 친지 중에 파병 군인이었던 분들이 있는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아픈 기억, 그리고 그것을 포함한 자신들의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들려주고 싶지도 않은 상처와 고통 때문이었을까? 기억과 이야기마저 반국가적인 것으로 여겨져 드러낼 수도 없고, 들려줄 수도 없는 시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였을 ‘국민학교 고학년’ 때쯤인가에 아버지로부터 들은 일화가 두 개 있기는 하다. 모두 ‘비극적’인 것으로, 하나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 당신의 동기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 역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것으로 폭격에 따른 화재로 목숨을 잃은 병사들 이야기였다.
중학생 때인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에 관해 들은 일화에 바탕을 두고 ‘풍선’이라는 제목의 소설 흉내를 낸 글을 쓰기도 했었다. 엉망이라 생각되어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서 지금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생생히 기억한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파병 대열에 지원해 베트남에 가게 된 청년 병사의 이야기다. 그는 작전이 없는 날이면 몰래 미군의 물탱크 청소 ‘알바’까지 뛰면서 돈을 벌어 한국의 가족에게 보내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폭격으로 불이 난 물탱크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이런 식의 죽음을 나는 그 병사가 참전을 통해 이루길 바랐던 ‘잘살아보세’의 꿈이 허망하게 날아가버린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풍선’이라는 제목을 단 이유였다.
독립기념관도 외딴곳 될까 우려
어설픈 작가 흉내에도 불구,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이들이 쓰고 만든 책과 영화 등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살아 돌아왔으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도.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쯤 베트남 전쟁을 다룬 문학 작품과 영화와 TV드라마 등이 꽤 많이 등장했던 것 같다. 반공주의라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봉쇄·차단했던 베트남 전쟁에 관한 다른 혹은 가려졌던 사실에 기초한 시각과 사유의 길이 1980년대 말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장 기억나는 것은 1988년 단행본으로 출판된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이다. 안정효의 <하얀전쟁>도 있다. 소설로는 1985년에 나왔는데, 1992년인가에 영화로 상영되었다. 작고한 유명 배우 강수연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영화는 파병 군인들의 전쟁 후유증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한국의 베트남 전쟁 파병과 참전을 자유와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세력에 맞선 것으로만, 또 전쟁 특수를 가져와 경제발전의 기틀을 놓았다는 것으로만 채색했던 것에서 벗어나 다른 측면이 있음을 알려주려 한 작품들이었다. 당시 통치세력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통치세력을 부정하기보다, 전쟁 때문에 희생당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가 듣고 기억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념이 아니라 사람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4) 정치권이 한·일관계를 둘러싸고 다시금 역사전쟁 중이다. 윤석열 정권이 친일 논란 인사들을 독립기념관장직 등에 임명해 사회적으로 비판 여론이 일면서 촉발되었다. 저조한 지지율을 견디기 위한 보수 결집 외에 역사전쟁을 재개한 윤 정권의 정치적 목적과 의도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게 있다면, 홍범도 장군 논란 때처럼 항일독립투사를 포함해, 조국을 떠나 이국 땅을 헤매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를 드러내고 들려주기는커녕,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존재의 무게를 느낄 역사를 아예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적 목적과 의도에 따른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 윤석열 정권 주도의 역사전쟁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자칫하면 독립기념관도 화천의 월남참전기념관처럼 외딴곳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