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시인

두 쪽으로 갈라진 광복절 기념행사는 생각할수록 엄중하다. 지난 26일 국회에 불려간 독립기념관장 김형석은 친일역사관 논란에도 1945년 8월15일을 광복절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문수는 인사청문회에서 “일제시대 때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국적이 있느냐”며 당시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했다. 또 “(1919년 건립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일은 1948년 8월15일”이라고 강변했다. 국무위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나라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요즘 친일역사관을 품은 자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활보한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행각은 이제 노골적이다. 일본에 퍼주고 굽신거리고 손을 비빈다. 국민들은 낯이 뜨거워 하늘을 볼 수 없다. 친일역사관을 지닌 자들은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바꾸고, 한국에서 추방된 독재자 이승만 망령을 환국시켜 건국의 아버지로 앉히려 한다. 이승만이 누구인가. 친일파를 대거 기용해 정적을 제거하고, 한국전쟁 땐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팽개치고 한강 인도교를 끊으며 도망쳤다. 그런 인물을 국부로 삼겠다고 한다. 이는 침묵으로 친일사관에 동조하는 윤 대통령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1948년 건국’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건국이란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바꾸려 한다. 그러기 위해선 1945년 광복절의 빛을 퇴색시키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끊어야 한다. 하지만 이종찬 광복회장 말대로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쓰인 역사로 덮지 못할 테다.

김구 상해임시정부 주석이 해방된 나라에 첫발을 내딛던 1945년 12월19일로 돌아가보라. 김구는 임시정부 개선 환영대회에서 이렇게 포효했다. “우리 임시정부는 3·1혁명의 전 민족적 대 유혈 투쟁 중에서 출산된 유일무이한 정부였습니다. 그야말로 민족의 총의로써 조직된 정부였고, 동시에 왜적의 조선 통치에 대한 유일한 대적적(對敵的) 존재였습니다. 우리 임시정부는 결코 일정당 일당파의 정부가 아니라, 전 민족 각 계급 각 당 각파의 공동된 이해와 입장에 입각한 ‘민주단결의 정부’였습니다.” 김구의 연설에 서울운동장에 모인 15만명이 열광했다.

다시 김구와는 대척점에 있었던 이승만이 대권을 쟁취한 후 정부수립 기념식을 거행했던 1948년 8월15일로 돌아가보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날에 동양의 한 고대국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투쟁하여온 결실이 실현되었다”고 말했다. ‘정부 회복’ 외에는 어느 한구석도 건국에 다른 의미를 첨가하지 않았다.

“해방된 지 3년 만에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는 날. 1948년 8월15일 서울 시내는 이른 아침부터 흥분과 설렘으로 술렁거렸다. 남대문과 동대문 등의 문루에는 ‘대한민국 만세’를 아로새긴 오색의 현판이 내걸렸다. 중앙청 앞 광장에서 세종로, 남대문에 이르는 길은 새벽부터 몰려든 시민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전차 운행조차 일시 중단됐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가’가 계속 울려 퍼졌다. ‘삼천리 무궁화 새로이 피라/ 반만년 이어온 단군의 피로/ 겨레들 모두 다 손을 잡으라/ 민족과 인류의 영원을 위해/ 우리는 받들자 대한민국을/ 다같이 받들자 우리의 조국’… (기념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이승만은) 힘주어 ‘대한민국 30년 8월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30년’은 상해임시정부의 정체성과 정체(政體)를 계승한 정부임을 내세운 것이다.”(손동우·양권모 <자유의 종을 난타하라>)

이것이 역사다. 광복절을, 정부수립일을 맞아 환호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민중이 역사의 증인들이다. 흰옷 입은 그분들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우리가 검은 옷을 입었다고 어찌 조상들을 역사에서 추방할 수 있는가.

아무리 봐도 저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에는 조국과 민족이 들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친일사관을 지닌 자들이 득세하는 이유가 뭘까. 왜 정권은 역사를 비트는 세력에 곁을 내줄까. 아무래도 떠나가는 민심에 절망한 윤석열 정권이 권력사수 결사대를 자임하는 자들과 결탁한 것 같다. 밀정이 누구인가. 한국을 비하하고 무시해 일본을 이롭게 하는 자, 권력에 기생해 돈과 밥을 얻어먹는 자, 민족 정기를 훼손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자가 밀정 아닌가. 밀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안에 밀정이 있다. 29일은 국치일이다. 또 다른 치욕이 밀려든다.

김택근 시인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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