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 발표 후 의료계는 연일 혼란이고 국민은 불안한 상태다. 그 여파는 날로 커가서 상급종합병원 진료는 현재 비정상 위기체제로 간신히 운영 중이다. 대한민국 의료계, 의과대학은 파행으로 치달으며 폭발 임계점에 와 있다. 증원 발표 후부터 시작된 의대생 및 전공의들의 수업 거부와 근무 이탈은 유급과 사직으로 나아가고 있고, 교수들의 소진과 일부의 사직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 상급종합병원은 병원 자체가 환자인 상태다. 일부 국립대 총장들이 교수 채용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퇴직 행렬만 이어지고 있다.
최근 낙상사고 후 ‘응급실 뺑뺑이’를 직접 경험한 한 유력 정치인은 현 정권의 붕괴는 ‘의대 증원 정책의 실패와 의료 마비로 시작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서울시내 한 종합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의료센터에 본인 혼자만 남았다고 호소하면서 곧 붕괴 위기에 처할 응급실의 위험신호를 세상에 전했다. 복귀하지 않고 있는 익명의 전공의가 쓴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는데, 정부 통제로 인해 전문가층이 와해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들의 ‘전문 의학’이 아니라 심평원이라는 기관이 통제하는 ‘심평 의학’, 법원이 진단하고 판단하는 ‘사법 의학’이 지배하고, 마침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2025년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을 기점으로 한국 의료는 확실히 고장난 체계가 되었다”는 절절한 호소였다.
현 정부의 무지와 준비 부족, 정책 강행으로 인해 국민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병실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만사 제치고 쏜살같이 달려가서 심폐소생술을 할 의사가 없다. 혹은 심폐소생술을 할 의사가 너무 지쳐서 환자를 살려내지 못할 수도 있다. 수술을 함께할 전임의도, 전공의도, 간호사도 없는 상태에서 수술은 지연되고, 그사이 죽음을 맞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전공의가 사라진 빈자리, 교수들의 휴직·사직으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메꾸려 하는 시도들은 실패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그리고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분노보다 차가운 절망이 의료 현장을 감돈다.
이 상황을 만든 의대 입학정원 증원 강행에 대한 국회에서의 8월16일 청문회는 국민 설득은커녕 정부 관료들의 속임수 행렬만 연속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의대 입학생 2000명 증원 논의에 대한 회의를 탐문하는 자리에서 장차관 및 공직자들은 “회의 참석자를 밝힐 수 없다”고 하다가, “회의록이 없다”고 하다가, “회의록이 있었는데 파쇄했다”고 하는 총천연색의 거짓말 종합쇼를 펼쳤다. 입을 맞추려다 실패한 한 무리의 거짓말집단을 마주해야 했다. 그날 청문회의 일부를 보고 정신과 의사로서 다소 걱정되기도 한다. 혹시 누군가의 협박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국민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고립되어 지내는 것은 아닌지. 혹은 미국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말한 집단사고에 처한 상태는 아닌지, 아니면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공유정신병 상태로, 메시지 전수자에게 2000명 증원 달성을 망상과 소명으로 강요받은 것은 아닌지도 살짝 걱정되었다.
그들은 2000명 증원을 원칙적으로만 지키려 했지, 실제로 가능한지를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세계의 많은 의사들과 의과대학 교육에 관여하는 전문가들은 한꺼번에 2000명의 전문가를 새로 길러낼 준비가 돼 있는지를 당연히 물을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는 건물 올리듯, 플라스틱 찍어내듯 길러지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생명에 관여할 전문가를 순식간에 돌진하듯 만들려는 저의는 진짜 무엇일까? 하루바삐 현실 가능한 정책으로 전환하고. 정부는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의 불가능한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