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붕괴는 내부균열에서부터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도쿠가와 막부 마지막 쇼군(15대)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에 관련된 사료를 읽다가 흥미로운 걸 봤다. 요시노부는 당시 교토에서 막부정권을 뒤엎으려는 사쓰마번(薩摩藩), 조슈번(長州藩)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막부를 스스로 해체하고 쇼군(將軍) 자리에서 사임할 것을 선언하며 대권을 천황에게 바쳤다. 대정봉환(大政奉還, 1867년 음력 10월14일)이다. 그런데 약 한 달 전인 음력 9월10일 에도(江戶)의 기이번(紀伊藩) 저택에 한 통의 격문이 날아들었다.(<德川慶喜公傳> 7) 도쿠가와가 은고지사(德川家恩顧之士) 명의로 된 이 투서에는 현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히토쓰바시 요시노부(一橋慶喜)로 지칭하며 극렬히 비방하는 문장이 가득하다. 요시노부는 1년 전 히토쓰바시 가문에 양자로 갔다가 도쿠가와가로 돌아와 쇼군에 즉위했는데,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격문의 작성자는 요시노부가 조슈번을 정벌한다며 전 쇼군(14대) 도쿠가와 이에모치(德川家茂)를 오사카까지 출진케 하고선 진퇴를 결정하지 않고 머뭇거리다 병약한 이에모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규탄한 다음, “이는 칼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시해(弑害)나 마찬가지”라고 극언했다. 또 13대 쇼군 이에사다(家定)는 1858년 병사했는데, 이도 요시노부가 에도성의 어의(御醫)를 시켜 독살한 것이라고 했다. 격문은 “불충불의의 극”에 달한 요시노부의 명령은 따르지 않겠다며 지금부터 100일 안에 막부 주류파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요시노부 진영에 쳐들어가 그 목을 따서 닛코묘(日光墓,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에 바치겠다며 이는 ‘역적을 주벌(誅伐)’하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명색이 도쿠가와 가문의 신하라는 자가 현 쇼군을 이렇게까지 극렬하게 비방하는 걸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도쿠가와가에는 3개의 방계가문이 있었는데 오와리번(尾張藩), 기이번(紀伊藩), 미토번(水戶藩)이다. 도쿠가와 종가에 후계자가 없을 경우에는 이 가문들 중에서 쇼군을 찾아야 했다. 병약한 13대 쇼군 이에사다가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안 보이자 1858년 후계자를 정하기 위한 격렬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후보는 기이번의 이에모치, 미토번의 요시노부였다. 요시노부의 아버지는 사사건건 막부를 비판한 미토번의 다이묘(大名) 도쿠가와 나리아키(德川齊昭)로 막부 주류파의 비토대상이었다. 결국 후계자는 이에모치로 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도쿠가와 막부 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안세이安政의 대옥大獄)

쇼군 자리에 오른 이에모치는 12세 소년이었다. 아무 존재감 없이 자리만 지키다 급사했다. 쇼군 궐위 사태 속 요시노부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막부 주류파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쇼군 취임을 받아들였다. 15대 쇼군 자리에 오른 요시노부는 재임 기간 내내 에도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에도의 막부 주류파를 제쳐놓고 교토에서 천황 공작에 올인했다. 막부 주류파는 요시노부가 막부를 천황에게 팔아넘기려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이런 그들이 요시노부의 대정봉환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우세한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대정봉환으로 여론도 나쁘지 않았던 도쿠가와 막부가 왜 그렇게 맥없이 무너졌는지, 명색이 쇼군인 요시노부는 왜 한 번도 전의를 보이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요시노부의 전쟁 회피에 대해선 존왕주의자로서 천황을 상대로 차마 총구를 겨눌 수는 없었다는 설, 내전에 서양 열강이 개입하는 걸 피하려 했다는 설, 원래 권력의지가 없는 인물이었다는 설 등이 있어왔으나, 막부 주류파와 끝내 결합하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막부가 멸망한 지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막부 유신(遺臣)들은 요시노부를 막부를 팔아먹은 자라며 상종하지 않았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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