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열대구, 달구벌 대구에 벗들이 산다. 오랜 날 교분하고 지내는 간디학교 양희창 형을 뵈러 대구엘 하루 갔는데, 형이랑 벗들과 노무현 바보 주막에서 탁배기도 한 순배 하고, 물이 씨길래(목이 마르다는 대구 사투리) 청라언덕 아래 커피집에 들러 아메리카노 일잔. 과거 계산성당에 붙어 있는 그 커피집 ‘커피명가’에서 ‘커피여행’ 강연을 한 일도 있다. 대구 벗들에게 전화도 빙 돌려 너가배 너거매(네 아버지 어머니) 안부도 여쭙고, 다시 88고속도로를 타고 팔팔하게 귀가했다. 며칠 지나서 대구 인연이 또 이어졌는데, 대구 남자 이무하 선배가 내 산골집엘 방문. 대구 남자 김광석이 불러 히트를 친 ‘끊어진 길’의 원곡자 가수렷다. “이 아름다운 세상 참주인된 삶을, 이제 우리 모두 손잡고 살아가야 해….”
선배랑 과일과 차를 농가먹으며(나눠먹고) 얘기보따리를 풀었다. 다음날 같이 땅끝 강진 방문길. 다산초당 옆마을 남녘교회를 사임한 지 올해 8월로 딱 20년이 된다. 마지막 예배는 박노해 시인 형이 설교를 해주셨는데, 그분도 내가 사임할지 모르고 오셨댔지. 그 후 20년 세월이 후딱 지났구나. 이무하 선배가 노래 ‘끊어진 길’을 신자들에게 구성지게 들려드렸다.
지금 계신 목사 형 부부랑 할매 권사님들이 정성껏 점심 대접. 또 김치를 담궈설랑 같이 내려간 식구들에게 일일이 나눠주시는데 그만 울 뻔했다.
“그라마 후재 뵈입시더. 우야돈덩(어쨌든) 건강하게 지내시길요.” 대구 남자도 작별인사를 넙죽, 나 거채이(문제아)는 죄인이라 고갤 숙이고 돌아왔다. 두어 주 대구 남자들만 만났더니 대구 사람 다된 것 같네. “바라바라 일마야” 대구말을 하면서 아우들을 만날지도 몰라라.
가을맞이 푸닥거리라도 해야 쓰겠다. 올해는 징하게 가을바람이 아니 부누나. “저 부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그 길 끊어진 너머로 손짓하며 부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