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이나 물 같은 에너지 수급 문제를 다룰 때 어떤 방식으로 얼마큼 에너지를 만들어내느냐 못지않게, 어떤 경로로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지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적정량의 에너지를 만들고, 원활한 방식으로 이동시켜,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과정 모두 에너지 수급 정책에 포함되는 셈이다. 한국처럼 수도권에 모든 시설과 수요가 집중된 나라에서는 에너지를 만들고 배달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 사이에 이해충돌과 갈등이 반복되기 쉽다.
기후위기와 폭염이 심해지고,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에너지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증설 붐을 타고 있는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고, 그 추세는 더 가팔라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량이 일본 연간 소비량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용인에 지어지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2050년까지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전력을 추가로 쓸 것으로 보인다.
물도 마찬가지다.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면서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가 더 절실해지고, 산업용 용수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생산 공정에는 막대한 물이 들어가는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하루 동안 필요한 물의 양은 2050년이면 대구 하루 사용량과 맞먹는 76만4000t에 달할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마음이 급하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고 목표대로 2027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을 시작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전력 공급을 늘리고, 댐을 더 지어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역에서 만든 에너지를 인구와 산업단지가 몰려 있는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끌어다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갈등이 번지고 있다.
가장 돌출하는 지역은 한국전력과 정면으로 맞붙은 경기 하남시다. 하남시는 지난달 한전이 신청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을 최종 불허 처분했다. 이 사업은 기존 부지에 있던 철탑을 실내 건물로 옮기고, 직류송전(HVDC) 변환 설비를 새로 지어 울진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수도권까지 들어오는 데 핵심 역할을 맡게 된다. 하남시는 “사업 부지가 대규모 거주 단지 및 다수의 교육시설과 연접해 있고, 주민 의견수렴 절차 없이 증설 입지를 확정하는 등 주민 수용성도 결여돼 있다”고 했다. 한전 측은 “앞으로 수도권 전력 공급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히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하남시 같은 사례가 더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전력을 생산해도, 송전망이 부족해 전력 공급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23 중기 에너지 수요전망(2022~2027)’에서 “향후 5년 발전 부문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송전선로 제약”이라고 내다봤다.
환경부가 지난달 댐 건설 후보지로 발표한 14곳 중 일부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환경부는 “홍수·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미래 물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그릇이 필요하다”며 14년 만에 댐 건설 계획을 밝혔다. 이 가운데 지자체 차원에서 댐 건설을 건의하지 않은 강원 양구군과 충북 단양군 등에서 가장 먼저 반대 운동이 일고 있다. 환경파괴와 주민 피해가 불 보듯 뻔한데 수도권에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해 지역을 희생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들 지역은 이미 소양강댐과 충주댐 건설로 주민 피해를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환경부는 댐 건설에 관한 계획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댐 사전검토협의회’를 폐지하는 법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전망 확충과 댐 건설을 둘러싼 동시다발의 지역 간 갈등이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지독한 ‘수도권 일극주의’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 정부는 이 간극을 좁힐 생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연간 전력사용량 중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53%로 절반을 넘고, 서울·경기 지역의 사용 비중은 35%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왜 우리 지역에 지어야 하느냐고 반대하는 곳의 호소를 지역 이기주의로 쉽게 치환해서 볼 수만은 없다. 최소한 반대하는 지역 민심을 끝까지 설득하려는 노력, 장기적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려는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