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사회 고유의 문화가 바뀌어야만 한다
역사에는 세상을 바꾼 많은 혁명이 있었다. 지금 전 지구의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혁명이다
한국의 문화혁명이 한국을 넘어 지구 미래를 바꿀 수 있게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친구가 나를 만나서 제일 먼저 건넨 말은 “한국 왜 이렇게 더워, 기후변화 때문이야?”라는 질문이었다. 나에게 본인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 기온을 보여주며 “지금 싱가포르가 32도인데 서울은 35도야.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라고 물었다. 한국은 이제 가을이라 시원할 줄 알고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분명 과거에 방문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며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싱가포르처럼 일 년 내 기온이 일정하게 더운 열대지역은 정말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는 한 기후가 변한다는 것을 느끼기 어렵다. 반면에 사계절이 확실한 한국은 더위와 추위의 경계가 분명하여서 추워야 할 시기에 기온이 따뜻하면 쉽게 변화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계절의 벽이 무너지는 현상이 결국 기후변화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네가 지금 느끼는 이 더위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지금 전 세계는 매일 여러 다른 형태의 기후변화 증거를 쌓아가고 있다. 싱가포르보다 뜨겁게 변한 서울 기온뿐만 아니라 지금 옆 나라 일본에서는 온난화의 힘을 제대로 받은 역대급 태풍이 엄청난 양의 비바람으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기후변화의 원인 물질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 한국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현재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가 명시되지 않은 점에서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2031년 이후 감축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미래 세대의 기본권 보호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정성 있게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장기적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날로 심해지는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커지며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어 한국 헌재의 이러한 판단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에게 큰 울림이 될 수밖에 없다.
헌재의 판결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바로 우리가 세운 기후정책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근거한 모든 정책을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헌재가 지적한 부족하거나 모자란 부분을 찾아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특정한 이상기후 영향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이후에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수 있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헌재의 판단이 내려진 현 시점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다양한 기후변화 대응 관련 규제가 이미 발표되고 시행되는 시점이라는 점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만들어졌던 시기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관련 규범이 작동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국내외 정황으로 고려해보면 우리 스스로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며, 투명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와 방법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헌재 판결은 기후정책 바꾸라는 것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나도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변화 완화) 현재 진행 중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기후변화 적응)을 해야 한다. 먼저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아주 간단히 기후가 왜 바뀌었는지를 생각해보자. 기후는 인간 활동, 즉 인간 삶의 방식이 변했고 계속 변해가기 때문에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이용하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기후변화의 핵심이다. 바로 이것이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갑자기 왜 문화를 얘기하냐고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화의 정의를 살펴보면 모두 공감할 걸로 생각한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문화란 한 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로 정의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문화(culture)라는 단어가 인간에 의한 경작·재배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는 본질적으로 인간 삶의 방식이 변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라는 점에서 기후변화의 원인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성장하면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배출된 것이 기후변화의 원인인 것은 이제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명의 발달을 이룩할 수 있게 한 문화의 구성요소인 정치, 경제, 법, 제도, 도덕, 과학, 종교, 문학, 예술, 기술 등 인간의 생활양식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건 의도했건 이 모든 분야의 성장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가 기후변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온실가스의 배출량으로 보면 화석연료의 사용과 관련한 에너지 분야가 제일 큰 문제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왜 이런 행위를 해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가 속한 사회의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실효성 있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문화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냥 간단히 일부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선명한 변화를 만들 수 있게 문화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다시 기후를 되돌릴 수 없다.
선명한 변화 위해 문화혁명 절실
우리가 한 사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문화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의 공감과 이해 그리고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무조건 기후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집이 물에 잠기고 있으니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물을 퍼내자고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법에서 부족한 부분을 제시했으니 과학은 미래에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탐구하고 기술은 그 지식을 활용하여 실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며 경제는 이러한 기술이 잘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며 지금 당장 큰 피해가 발생하는 부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교육은 사회 구성원의 이해를 증진시켜야 하며 예술은 어두운 지금의 현실보다는 밝은 미래를 투영하여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한 사회의 문화는 결국 기후변화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물론 우리가 살아온 삶의 양식을 바꾸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 자신조차도 어렸을 적 부모님이 혼내셨던 나쁜 습관을 아직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꾸어가는 과정에 누군가는 기회를 얻겠지만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익의 불평등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기후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세계대전이라는 무자비한 전쟁이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인류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변화가 유발한 기후불평등은 하나의 문명을 없애버릴 정도의 위력을 과시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한 분야의 전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회집단의 삶의 양식을 결정짓는 모든 분야의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 궁극적으로 그 사회가 가진 고유의 문화가 바뀌어야만 한다. 인류의 현재를 위해 역사에는 세상을 바꾼 많은 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전 지구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혁명이다. 한국의 문화혁명이 한국을 넘어 지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한국이 먼저 가면 좋지 않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이 이제 그 정도의 국격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2100년 세계인의 교과서에는 이런 말이 실리면 좋겠다. 2024년 한국에서 시작된 문화혁명으로 인해 전 지구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인류는 2100년에도 아름다운 행성 지구에 거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