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부가 싫어하는 마을’의 옻나무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단양 보발리 옻나무

단양 보발리 옻나무

옻나무는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나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옻나무가 담고 있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가려움증과 심각한 발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오래도록 정성껏 키운 옻나무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충북 단양 가곡면 보발리 말금마을에는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우물가에 한 그루의 오래된 옻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15m, 줄기둘레 1m의 이 옻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이 마을에 들어서려면 자동차 한 대가 길섶의 나무들을 스치며 지나야 할 만큼 비좁고 굴곡이 심한 산길을 지나야 한다. 여간 조심스러운 길이 아니다. 이 길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우체부가 제일 싫어하는 마을’이라는 마을 별명을 절로 수긍하게 된다.

옻나무로서는 큰 나무에 속하는 이 나무는 전국에 4그루밖에 없는 옻나무 보호수 가운데 한 그루다. 사방으로 7m 정도 펼친 나뭇가지가 지어낸 옻나무 그늘이 품은 ‘말금이 옻샘’이라는 우물과 어우러진 풍경이 정겹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우물 곁에 서 있는 옻나무는 필경 성가신 존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을에서 이 옻나무를 오래 지켜온 것은 옻나무 뿌리가 닿아 있는 우물물을 귀한 약수로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의보감>에는 “마른 옻은 뭉쳐 있는 나쁜 피를 풀어주고, 장을 잘 통하게 하고, 기생충을 죽이며 피로를 다스린다”고 기록돼 있다. 또 민간에서도 골절상 신경통은 물론이고, 기침을 완화하고 소화기 장애에 따른 요통에 효능이 있다고 믿어온 나무가 옻나무다. 마을 사람들이 우물 곁의 옻나무를 지켜온 근거다.

곧게 오른 나무줄기의 4m 높이까지는 나뭇가지를 쳐냈다. 나뭇가지는 우물 지붕 위쪽으로만 뻗었다. 옻나무 독에 취약한 사람들도 편안하게 우물터를 찾아와 우물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한 배려다. 독을 약으로 이용하며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이 지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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