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집은 어디인가

김진우 정치에디터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브리핑·기자회견 뒤 참모들과 평가회의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후련함도 보였다고 한다. 앞으로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를 자주 갖겠다고 했다고도 전해졌다. 미국 대선에 등장한 ‘weird(이상한)’와 ‘creepy(기괴한)’는 이때 쓰는 모양이다.

국정브리핑·기자회견이 국민 눈높이에 못 미쳤다는 게 언론 대부분의 평가다. 국정브리핑은 자화자찬으로 채워졌고, 기자회견은 동문서답이 주를 이뤘다. 미흡함을 인정하고, 고충도 털어놓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자리가 누구한테는 더부룩한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여명808’이었던 모양이다. 최근 국민 절반이 ‘장기적 울분’ 상태에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던데, 이번 일로 더 갑갑해진 국민 속은 누가 풀어주나.

이상하고 기괴한 것은 그뿐만 아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의료공백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의료 현장에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면서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했다. 바로 다음날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2시간만 와서 보면 엄청나게 문제가 있는지 아실 수 있을 것”이라며 “현실과 너무 괴리가 심한 발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라며 장밋빛 경제전망을 밝혔다. 그 다음날 통계청은 7월 산업생산이 3개월 연속 감소세, 광공업생산은 19개월 만에 최대폭 감소, 도소매업은 8개월 연속 감소했다는 ‘반박성’ 자료를 내놓았다.

무엇보다 기가 막힌 건 “당정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윤 대통령 발언이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의·정 갈등 해법을 두고 전날까지 충돌했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안다. 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을 미뤘고, 의원 연찬회에 불참하는 뒤끝을 보였다. 그래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게 자유민주주의”란다. 과거 여당 대표를 향해 “내부총질” 운운했던 이가 윤 대통령이다. 후안무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통령이 어디 사는지 묻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별세계” “달나라” “판타지 세계” 등 다양하다. 안드로메다 개그는 웃기기라도 하지, 국정 지도자가 안드로메다에 산다고 상상하면 좀 오싹하다.

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주관적 절대세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중심이고, 자기 의견만 정답이다. 상대방을 재단해 처벌하면 그만인 ‘검사 27년’ 경력에 무리도 아니다. 문제는 설득과 타협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거다. 게다가 이 세계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남 탓을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집권 3년차에도 ‘전 정권씨’를 부르는 게 대표적이다. 야당 탓도 빼놓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이때까지 바라보던 국회와 다르다”고 야당을 탓하더니,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식에 불참하는 첫 대통령이 되면서 “국회 정상화가 먼저”라고 재를 뿌렸다. 국정 지도자로서의 책임은 쏙 빼놓은 ‘나 몰라 정신’이 놀랍다. 그가 내세우는 ‘4+1 개혁’ 달성을 위해서도 야당의 협조와 이해가 필요한데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

지난주 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두번째로 낮은 23%(갤럽)를 기록했다. 4·10 총선 직후와 같은 수치다. 여당의 총선 패배 직후의 ‘반성과 쇄신’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걸 국민들이 다 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는 정신승리를 계속할 태세다. 아니, 탄핵저지선을 지켜낸 걸 방패 삼아 대통령실에서 농성전을 하려는 모습이다. 게다가 그 주변을 방송통신위원장·독립기념관장·노동장관·국방장관·인권위원장(후보자) 등 이상하고 기괴한 인물들이 속속 감싸고 있다. 이러려고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나.

대통령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오래됐다.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데도 계엄령설에 민심이 반응하는 건 그가 또 뭘 할지 모른다는 불신이 매개다. 지난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 6월 첫 국정브리핑, 8월 광복절 경축사, 이번 국정브리핑·기자회견까지 ‘1인 무대’에 자기만족할 게 아니다.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대통령 임기를 줄이는 게 그나마 낫겠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민심이 아닌 다른 힘에 기대려 한다. 검찰을 활용하거나 반국가세력을 외치면서 잘못을 덮으려 한다. 그러다 되레 “국민 항전 의지”에 불을 붙일 수 있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김진우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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