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료 최후 보루, 공보의마저 빼앗나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농번기나 성묘 시기에 지역 언론을 통해 농촌 주민들에게 ‘교상’을 조심해 달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곤충이나 뱀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교상인데, 농촌에서는 벌에게 쏘이거나 뱀에게 물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2020년 홍성준 외의 연구자들이 쓴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독사 교상 환자의 임상적 양상과 합병증 비교 연구>를 보면, 뱀물림 사고로 읍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57.1%가 농촌지역 환자였다. 다만 고령자가 많고 병원과 거리가 멀어 응급처치가 도시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교상 환자 예후가 훨씬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의료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농촌 주민들이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시군 보건소에라도 뱀독소 치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뱀에게 물릴 일은 농촌 주민이 더 많건만 치료는 농촌에서 더 어렵다.

도시생활자에게 보건소란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보건증을 받거나 아이들이 어릴 때 예방접종을 받으러 가는 곳 정도다. 그러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보건소는 공공의료 최전선이자 최후방어선임을 깨달았다. 다만 도시에는 지근거리에 병의원이 많아 평상시엔 보건소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농산어촌의 보건소는 차원이 다르다. 외진 곳일수록 보건소의 존재감은 더욱 크다. 시군에 보건소가 있고 읍면에 ‘보건지소’가 있는 지금의 보건소 체계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미군정 때 도입되었다. 그러나 6·25전쟁과 재원 부족으로 1960년대 후반 넘어서 겨우 꾸려진 체계다. 본래 보건소 설립 목적은 예방접종, 가족계획, 위생, 영양교육과 같은 보건사업, 즉 질병을 막는 예방사업이 주요 업무다. 환자의 진료 업무는 병의원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 미군정의 의도였으나 당장 ‘무의촌’ 환자들이 넘쳐나 진료사업을 놓을 수 없었다.

보건소의 진료 역할은 의료시설이 태부족한 외진 농촌일수록 여전히 중요하다. 감기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호흡기 관련 만성질환 관리와 농촌 주민의 고질병인 근골격계 치료도 이루어진다. 약 조제와 복약 지도도 보건지소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벌레나 지네에게 물린 교상 치료도 종종 이루어진다. 치매예방 사업과 정신건강 증진사업 같은 보건사업은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지원 부족이 아쉽다는 의견이 많다. 귀농귀촌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로 농촌의 의료공백 문제를 꼽을 정도로 농촌의 의료사정 빤한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나마 농촌의료의 최후 보루인 보건소마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이 늘어나 고심이 깊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공중보건의 부족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보의 근무 기간은 36개월, 군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이에 공보의 대신 군 입대를 택하는 의대생이 늘었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에 의대생들이 대거 입대하여 향후 공보의 부족 문제는 심화될 것이다. 이미 보건지소를 통폐합하거나 공보의 한 명이 여러 면을 도는 순환근무로 농촌의료 공백을 겨우 메워오던 차였다. 여기에 농어촌 보건소장 모집도 어렵고, 공보의까지 부족하니 보건사업은커녕 면 지역 1차진료에도 차질을 빚어왔다. 이 와중에 지난봄부터 의료대란을 막겠다며 그나마 있던 농촌 공보의마저 도시의 대형병원으로 차출해 가기 시작했다. 빠져나간 공보의가 돌아오기도 전에 작금의 응급실 대란까지 맞아 의사를 또 빼가니 농촌 보건지소는 문을 닫을 지경이다. 명절과 수확기를 맞아 농촌에서는 아프고 다칠 일이 더 많아질 텐데 한걱정이다.

급한 환자들 먼저 살리고 오겠다며 기다려 달라는 정부의 궁색한 변명에 농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직감했을 것이다. 한번 비어버린 면 보건지소는 다시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농촌의 늙고 가난한 몸 따위는 처음부터 거추장스러워했다는 걸 말이다. 이를 국가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지 몰랐을 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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