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 자유기고가

아이들은 좁고 어두운 곳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든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오래된 아지트도 할아버지의 낡은 옷장 한 칸이었다. 나는 매일 그 안에 들어가 숨을 죽인 채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다가 잠에 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문고리에 매달린 나프탈렌 냄새를 맡으면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할 거라는 안도와 누군가 나를 찾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함께 밀려왔다. 결코 고립이 아닌, 누군가 나를 수색할 수 있을 정도의 은신. 그 욕구가 바로 아지트의 정의였다.

사춘기의 몸은 불안과 함께 자란다. 교복을 입을 때가 되자 내 몸은 더 이상 옷장에 들어가지지 않았다. 몸에 비해 훨씬 웃자란 정신은 옷장이 아닌 집도 좁다고 여겼다. 사방이 막혀 있어 안락하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은신처가 아닌 감옥이 된다. 나는 집을 나와 밤낮으로 새로운 아지트를 찾아 다녔다. 모두와 접촉할 수 있지만 모두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곳.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어서 나의 정체를 쉽게 숨길 수 있는 곳. 친구들과 무리 지어 배회하는 청소년 비행의 원리를 그때 알았다. 거리는 그 자체로 청소년들의 아지트였다.

어른이 되면 내 이름으로 된 집을 사게 되고, 그곳이 나의 영원한 아지트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은 어린 시절 당연하게 여겼던 꿈이 사실은 실현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길 위에 있었다. 서울은 이름 난 노상 아지트가 많았다. 명동 ‘아메리칸 어패럴’ 앞, 홍대 부근 ‘놀이터’, 신촌 공원. 그런 곳엔 늘 특별한 목적도 만날 상대도 없이 하루 종일 한자리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종종 그들에게 동지애를 느끼며 ‘어른 되기’를 한없이 유예했다.

거리의 동지들

번화한 거리가 아지트에 적합한 또 다른 이유는 그곳엔 항상 24시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 음식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이 될 때까지 길을 배회하다 첫차를 기다리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면 나 같은 사람들이 모두 의자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만큼 피곤해 보이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빈자리에 앉으면 쓰러진 이들의 쌕쌕하는 숨소리가 매장에 가득 울렸다. 그 고단한 적막은 내게 어떤 음악이나 말소리보다 큰 위로처럼 느껴졌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괴테의 말을 빌린 한 자기계발서의 제목은 ‘동기부여’라는 함의와 관계없이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는 문장이다. 왜냐하면 정말 사람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사는 대로 생각했다. 오랜 시간 길을 배회한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나만의 아지트 같은 것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나와 같은 양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그들과 그들의 공간은 늘 격리되어 특정한 이름으로 불렸다. ‘ZARA’ 매장 옆 ‘디스코팡팡’에서 노숙하는 아이들은 ‘자라인’으로, 경의선역 주변에 모여 일본의 ‘도요코 키즈’ 문화를 모방하는 아이들은 ‘경의선 키즈’로, 길거리에서 하루 종일 자신들의 일상을 송출하는 인터넷방송 BJ들의 자리는 ‘전깃줄’로. 사람들은 그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입으로, 손으로 읊으며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이 거리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도날드 할머니

그러한 주장을 들을 때마다 나는 10년 전 운명을 달리한 ‘맥도날드 할머니’를 떠올린다. 한 방송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노숙을 하며 사는 부랑자였다. 당사자는 정신적으로 쇠약한 상태였지만 방송은 그가 졸업한 학교, 재직했던 직장, 결혼 여부 등을 서슴없이 공개했고, 그 정보는 점점 살이 붙어 ‘사치가 심하고 허영심이 많은 여자’ ‘노처녀의 비참한 말로’를 설파하는 우화가 되었다. 그는 종교 자선단체와 기관의 도움을 거부하고 길에서 사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그는 사후에도 오랫동안 지탄을 받았다. 통념을 따르지 않고 살아온 죄, 사람들에게 객사의 공포를 자아낸 죄, 세상의 눈 앞에서 순순히 사라지지 않은 죄로.

세상에는 거리가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악의를 가진 이들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포의 이미지를 입혀 척결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면 악의는 거리로 탈출한 이들의 삶에 영영 엉켜 붙어 더는 통제할 수 없는 어둠이 될 것이다. 거리를 배회하는 인생을 모욕한다고 해서 내 불안이 줄지는 않는다.

내 마음 속 불안은 오히려 철없고, 아프고, 늙은 몸이 객사를 위해 마음껏 활보하는 것을 볼 때 비로소 사라진다. 나는 오늘도 죽기 직전까지 내가 ‘거리’라는 공공의 아지트를 누빌 수 있기를 소망한다.

복길 자유기고가

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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