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별난’ 대통령

양권모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분명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의 국회를 너무 싫어한다. “국회만 없으면 장관 할 만한 것 같다”(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는 말에서 ‘장관’ 대신 ‘대통령’을 넣으면 딱 윤 대통령의 요즘 심사일 게다.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국회) 상황 ”이라며 지금 국회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회를 전쟁터로 만든 책임의 절반 이상은 대통령에 있는데도 모른 체다.

윤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반감은 22대 국회 개원식 불참으로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식에 참석 안 한 첫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은 지금 못지않거나 더 고약한 정치 상황에서도 국회 개원식에는 참석했다. 야당의 그 ‘조롱과 야유, 피켓 시위’ 속에서도 협치를 당부하는 연설을 했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존중했기 때문일 터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 국회 입법권을 존중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국회 개원식 불참을 통해 그걸 재확인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만이 “처음 경험하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때까지 바라보던 국회하고 너무 다르다”고 했지만, 국민들이 보기엔 오히려 윤 대통령이 여태까지 보던 대통령들과 너무 다르다. 참으로 ‘별난’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만큼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 인사청문회에서 심각한 도덕성 의혹이나 왜곡된 역사 인식, 망언 전력, 자질 부족 등이 드러나 적합성에 의문이 제기된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 그런 경우 역대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하거나, 그래도 임명해야 할 불가피한 이유라도 설명했지만 윤 대통령은 막무가내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일제시대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 ‘제주4·3은 공산 폭동’ 등 왜곡된 역사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공산 혁명에 악용될 수 있다”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다. 그런 이유 등으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는데, 윤 대통령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임명을 강행했다. 임기 절반이 지나지 않았는데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된 장관급 인사가 29명에 달한다. 그새 지난 24년 동안 ‘공직윤리’의 파수 역할을 해온 국회 인사청문회의 허들은 무력화됐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남발도 국회 입법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21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역대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을 전부 합한 것보다 많다. 특히나 본인과 가족의 방탄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심각한 것은 야당과 싸움만 하려드는 윤 대통령이 앞으로도 무차별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점이다.

결국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은 검찰에 의해 무혐의 불기소로 결론났다. 검찰수사심의위라는 구색까지 맞춰 면죄부를 갖다 ‘바친’ 꼴이다. 검찰 수사 지휘부를 통째로 갈아치우고, ‘황제 출장 조사’를 벌였을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다. 윤 대통령은 조만간 국회에서 의결될 두 번째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배우자 보호’를 위해 이리 물불 안 가리고 휘두르는, 무도한 대통령은 예전에 없었다.

윤 대통령의 상궤를 벗어난 국정운영에 대해 민심은 이미 ‘심리적 탄핵’ 상태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3%에 그쳤다. 총선 이후 5개월 동안 지지율은 20%대에 고착되어 있다. 직선제 도입 이래 집권 3년차 대통령 지지율로는 최저다. 역대 대통령은 지지율이 급락하면 반성하고 쇄신하는 척이라도 했다. 인사 쇄신도 하고, 영수회담도 하고, 잘못에 대해 사과도 하고,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은 했다. 한데 윤 대통령은 바닥의 지지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신 국회·야당 탓을 하고, 여당 대표 탓을 하고, ‘검은 세력’의 선동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실의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변화 없이 지금까지 해온 대로 독단·독선의 국정운영을 계속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국회와 야당은 무시하고, 여당은 들러리 세우고, 오로지 ‘거부권’과 ‘검찰’에 기대어 남은 2년8개월을 버틸 요량인 것 같다. 갑작스레 검찰이 전임 대통령 수사에 가속페달을 밟는 것도 그 일환일 터이다. 머잖아 지지율 20% 선도 무너질 수 있다. 민심이 성나면 배를 뒤집는다는데 과연 그런 걸로 버틸 수 있을까?

양권모 칼럼니스트

양권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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