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인권 수난 시대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덮고 가자는 대통령과 정부의 관료들이 맨 앞에서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인권을 경멸하는 인사를 거침없이 진행한다.
입법·사법·행정부 등 국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차별을 시정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창조론 신봉자’를 세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차별금지법을 공산혁명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대로 그의 인식에는 ‘정교 분리’도 안 되어 있다. 인권 관련 단체나 인사들만이 아니라 보수언론조차 임명을 철회하라고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비판과 조언을 들을 리 없다.
지난 9월6일 오전에 들끓는 여론에도 대통령은 안창호씨를 차기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다. 그에 따라 그날 오후에 송두환 위원장의 이임식이 급하게 진행되었다. 이임식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전현직 위원들(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은 불참)과 직원들 상당수가 참석했다. 나와 같은 인권단체 활동가들도 참석했다. 이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힘든 시간들이 기억났을 것이고, 앞으로 전개될 처참한 상황을 예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적 과제 담긴 뜻깊은 말들
송두환 위원장이 재직했던 3년 중 전반기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쇄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적체된 진정 사건을 상당히 정리하여 진정 사건의 처리가 빨라졌고, 노란봉투법, 기후위기 등과 관련한 의견서도 활발하게 제출했다. 아시아·태평양국가인권기구회의 의장을 한국의 국가인권위원장이 맡았다. 국내외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본궤도에 오르는가 싶었다.
그런데 김용원, 이충상 두 위원이 상임위원을 맡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매번 회의 때마다 막말과 혐오 발언이 난무했다. 수시로 위원장과 직원들은 모독에 진저리쳐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런 시간을 의연하게 견뎌냈던 위원장의 이임식이었으니 그 자리의 참석자들은 이심전심을 이뤘다.
이임사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던 송두환 위원장은 “원론적으로 헌법상 평등권을 좀 더 구체화하려는 것이고, 국제인권기구들을 비롯한 국제사회 일반에서 줄곧 요구받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사회 일각의 편견과 오해, 그리고 안일함이 뒤얽혀 있어 아직 평등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의 전기를 마련해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송 위원장은 떠났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8월29일, 대법원의 판결 직후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조희연 교육감이 모든 걸 잘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난 10년 동안 분명한 방향을 갖고 교육현장을 변화시키기 위한 혁신교육을 꾸준히 실천해낸 점은 평가되어야 한다. 조희연 교육감에게 학생들은 ‘교복 입은 시민’이었다. 그들이 일상의 민주주의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운영위원회도 참여하는 길을 열고, 학생참여예산제를 도입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학교교육에 노동인권교육을 도입하고, 성평등교육,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지원 등 인권 관련 정책들을 적극 추진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원흉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장 학교에서 사라진 체벌만 봐도 이 조례가 가져온 학교의 변화는 가히 놀라운 일이다. 두발, 심지어 속옷까지 통제의 대상이었던 관행들을 고쳐나갔다. 조희연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분투했지만, 서울시의회는 조례 폐지안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인권 무시 중단 못 시키면 ‘지옥’
“지난 10년 혁신교육의 성과는 일일이 열거하기 벅차도록 다양합니다. 시험 점수로 차별하고, 학생의 머리 모양을 단속하며, 체벌이 횡행하던 권위주의 학교문화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이 이임사에 밝힌 이 성과 위에서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오는 10월16일 치러질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의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격분시키는 만행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송두환, 조희연, 이들은 시대적 과제가 담긴 이임사를 남기고 떠났다. 인권의 무시와 경멸을 중단시키지 못하면 그건 지옥이다.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누가 중단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