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건전재정인가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이제 곧 2025년 정부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간 격돌이 시작될 것이다. 677조4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은 전년 대비 3.2% 증가한 규모로 경상성장률 전망치 4.2%를 밑도는 긴축예산이다. 예상물가상승률 2.1%를 적용하면 실질증가율은 1.1%에 불과하다. 분야별 증가분을 보면 ‘경제활력 확산’을 위한 예산이 7조7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약자복지’는 4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약자복지를 강조했지만, 연이은 감세와 긴축재정으로 복지예산의 확충이 미진하고, 경제 성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의 높은 성장세와 달리 2분기 국내총생산 증가율이 전기 대비 -0.2%의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고용증가의 둔화와 실질임금의 하락은 내수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022년 전년동기 대비 94만명에서 2024년 22만명으로 감소했고, 실질임금 증가율은 1.1%에서 -0.4%로 낮아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와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2022년 이후 가계의 소비지출 증가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소상공인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에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는 98만7000명에 달했다.

‘절약의 역설’은 정부 예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기침체기에 정부지출을 줄이면 성장률이 더 큰 폭으로 떨어져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IMF의 2022년 4월 경제전망에 따르면 2024~2027년 기간에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2.42%였지만, 2024년 4월 전망치는 2.25%로 하락했다. 기재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는 총 365조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코로나19 경제위기에 처했던 문재인 정부의 407조원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윤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브리핑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건전재정 기조를 굳건히 지킨 결과, 국가재정도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물론 미래세대에게 혜택이 귀속되는 예산사업은 국채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일면 타당할 수 있지만, 현세대를 지원하는 예산사업은 공평과세로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3차례의 세법개정안에서 81조6000억원에 달하는 감세안을 제시했고, 특히 올해 상속세율 개편으로 예상되는 감세액 중 약 70%는 최상위 0.01%의 피상속인에게 귀속될 것으로 추정된다. “상속세 제도는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하여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96헌가19)에 명백히 반하는 정책이다.

더욱이 낙수효과가 작동 않는 현실에서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으로 인해 양극화는 확대되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4년 2분기에 상위 20%와 하위 20% 간 시장소득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서 “성장의 과실이 국민의 삶에 더 빨리 확산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고 있다”고 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그러면 민생경제를 회복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건전재정의 좁은 틀을 벗어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보다 긴 시계에서 예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일부 유럽국가들은 조기에 긴축정책으로 전환하여 경제성장률의 하락과 재정악화를 초래했다. 긴축과 저성장, 국가채무의 증가로 이어지는 자멸적 긴축재정은 피해야 한다.

둘째, 약자복지의 확대를 넘어서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면서, 공정한 보상을 통해 일터를 확장하고, 근로 여건도 향상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도 어렵다. 특히 소득기반 사회보험으로의 전환, 지역·계층 간 의료불평등의 해소, 공공임대주택의 공급확대, 대학입시에서 지역별 비례 선발제도의 도입 등으로 혁신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셋째, 부자감세 기조를 철회하고 세수를 확충해야 한다. 2025년 기획재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세수결손을 메꾸기 위해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차입한 대가로 2025년에 지불해야 하는 예수이자 상환액이 무려 29조5000억원에 달한다. 약자복지예산 증가분의 6.9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없고, 에어 매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민생회복도 혁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2025년 예산안이 사회적 필요를 반영하여 합리적으로 조정되기를 기대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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