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난주 서울 방문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강제동원 배상 제3자 변제를 시작으로 ‘아낌없이’ 내줬지만 기시다는 물컵의 ‘나머지 반’을 채우지 않은 채 돌아갔다. 이는 2019년 7월 아베 신조 총리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역사전쟁이 한국의 굴복으로 일단락된 것이자, 다시는 사과하지 않겠다는 ‘아베 독트린’이 관철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일관계를 승패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과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과거사 문제에선 ‘제로섬’ 관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윤석열 외교는 아베가 짜놓은 일본의 대외전략이 완성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12월 발표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2012년 아베가 만든 ‘인도·태평양 구상’의 복제판이다. 인도·태평양 구상은 일본 민주당 정부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중·일 갈등으로 좌초한 뒤 총리에 오른 아베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탈아입구(脫亞入歐)’ 전략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이 전략을 이름 그대로 받아들였고, 바이든 행정부도 이를 계승해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포함한 행동계획을 마련했다. 미·일과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한국으로서는 껄끄러운 사안들이 많아 문재인 정부는 거리를 뒀으나, 윤석열 정부는 ‘이름까지 그대로’ 삼켰다. 초기에는 중국을 주요 협력국으로 언급하는 등 ‘차별화’ 시늉을 냈으나 한·중관계 악화로 한·미·일 안보협력만이 남게 됐다. 대외전략이 일본과 ‘싱크로율 100%’가 되면서 한국이 ‘독자적 외교’를 펼칠 공간은 사실상 사라졌다.
역대 정부는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신뢰 구축, 즉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 변화와 연동시켜왔다. 이명박 정부조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무대응 때문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최종 단계에서 무산시켰다. 그러나 윤석열은 한국 외교가 축적한 대일 정책 컨센서스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지난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은 대중국 견제·봉쇄 전략에 공동 대응키로 하는 한편 한·일 안보협력을 ‘준동맹’으로 격상시켰다. 한국이 미·일의 중국 견제·봉쇄에 가담한 것은 1992년 이후 견지해온 대중국 외교 기조의 근본적인 전환이자, 신냉전 최전선에 서는 리스크를 안게 됨을 뜻한다. 합의대로 라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서 중·일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일본 편에 서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해 한·미,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될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한·일 군사협력의 무한 확대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는 안보협력 수준과 신뢰 수준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 대신 놀랍게도 대일 저항의 역사를 지우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국가보훈부가 ‘간도특설대’ 백선엽 장군의 친일 경력을 삭제하고, 국방부는 1920년대 가장 빛나는 항일독립투쟁의 주역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치우려 했다. 지난달 발간된 군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는 안중근·홍범도의 항일투쟁이 삭제됐고, 조선은 ‘부국강병은커녕 치안조차 유지할 수 없는 나라’로 기술됐다. 머잖아 일본의 군사력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데 따른 저항감을 줄이기 위해서인가.
윤석열은 취임 이후 국가교육위원회 등 역사 관련 주요 국책 연구소·기관의 책임자를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로 임명한 것도 모자라 일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은 역사학자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에 앉혔다. 집권 기간 한국인의 ‘반일 아이덴티티’를 지워나가겠다는 기세다. 그러나 한국인의 ‘반일 정서’는 일본이 과거사에 진지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면 자연히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이런 우격다짐이 오히려 반일의 자양분이 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인가.
인·태 전략을 창안한 아베는 2015년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우리의 아이나 손자, 그리고 그 후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라는 숙명을 계속 짊어지도록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기시다는 고인이 된 아베의 유훈(遺訓)을 충실히 이행했다.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를 책임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며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2년여에 걸친 윤석열·기시다의 브로맨스로 ‘아베 유훈 체제’가 등장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정상회담을 저세상의 아베도 흐뭇하게 지켜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