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놀이의 결말

손희정 문화평론가

“아이들의 디지털 놀이터.” 한 시사프로의 진행자가 딥페이크 성범죄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 아이들의 놀이터에 딥페이크라는 새로운 장난감이 주어지면서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다는 논평이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자의 얼굴, 신체, 이름을 재료로 삼아 ‘가짜’를 만들어 짓밟고 낄낄거리는 행태는 전혀 새롭지 않다.

언론에서 딥페이크 범죄에 ‘놀이’란 말을 붙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물론 소년들 사이에서 이건 ‘놀이’지만, 이 말이 반사적으로 만들어내는 ‘순진함’이라는 이미지가 문제다. “이것이 범죄인 줄 모르는 10대, 20대 남성”이라는 게으른 설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키운 문화적 뿌리를 지우고 새로운 테크놀로지 탓만 하도록 만든다.

물론 딥페이크 기술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로는 제대로 제재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신기술을 갖고 논 ‘아이들’ 대부분은 딥페이크 생산과 유통이 불법임을 알고 있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이 행위가 피해자의 존엄을 짓밟고 모욕을 주는 일임은 잘 알고 있다. 바로 그것이 디지털 놀이터에서 오래도록 진행되어 온 ‘여자를 괴롭히는 놀이’의 핵심이니까 말이다. 애초에 딥페이크의 이름은 ‘지인능욕 사진 합성’이었다.

딥페이크 성폭력은 방대한 여성혐오시장의 네트워크로부터 탄생하고, 그 안에서 수익구조를 만들면서 산업화됐다. 이 네트워크는 ‘악플문화-여성에 대한 능욕과 멸시, 괴롭힘이 자원과 돈이 되는 시장-사이버레커-여성을 착취하는 포르노그라피 산업-n번방/딥페이크-디지털교도소-불법도박사이트-사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남초 커뮤니티와 연동되어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와 같은 말로 이런 네트워크의 성장을 방조했다.

여기서 성격이 조금 달라 보이는 것, 하지만 한국사회가 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 디지털교도소다. 2020년 3월 n번방 사태와 7월 ‘웰컴투비디오’ 손정우 미국송환 불발에 대한 분노를 먹고 빠르게 성장한 디지털교도소는 SNS에서 n번방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면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별도 사이트를 운영하며 n번방 외에 성범죄자나 아동학대범 등의 신상을 공개했고, 그렇게 이슈의 중심이 된다.

이런 ‘불법적’인 활동은 한동안 ‘초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무고한 피해자가 자살을 하고 나서도 사람들은 이를 쉽게 비판하지 못했다. 자신의 사촌동생 역시 n번방의 피해자라며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밝힌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의 말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의의 사도인 양 영웅놀이를 하던 그가 실은 온라인 마약 판매상이자 n번방 운영자였음이 밝혀진다. 디지털교도소는 n번방의 남성 판본으로, ‘지인능욕’ 광고 글 등으로 남성들을 유인한 뒤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그들을 맘대로 부렸다. 여기엔 불법도박사이트 및 사채업도 연루되어 있었다. 보시다시피 2020년에 벌어졌던 이 사건에서 이미 ‘지인능욕’, 즉 딥페이크가 등장한다.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놀이’로 이해해준 사회는 남성들에게도 지옥을 열어 놓았다. 소라넷 케이스가 보여줬던 것처럼 여성의 신체와 존엄을 훼손하는 것은 주목경제에서의 자원이자 남성들을 불법도박사이트와 사채시장으로 유입시키는 경로였다. 그리고 이젠 불법도박으로 사채에 발목을 잡힌 청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딥페이크 산업으로 유입되는 중이다.

딥페이크 건이 터지자마자 ‘과잉규제’부터 염려했던 과방위의 이준석 의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지지 기반이 병들어가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

손희정 문화평론가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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